여유와 수용
여유와 수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1.26 17: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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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지/경남수필문학회원
 

‘좋은 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즈음이다. 컴퓨터만 열어도 휴대폰만 열어도 글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하루에도 몇 사람으로부터 삶의 지혜가 된다거나 발 빠른 정보라는 명목으로 긴 글들이 꼬박꼬박 도착한다. 돌고 도는 영혼 없는 좋은 글들을 나는 냉정하게 외면한다. 자신의 소리가 아닌 남의 소리를 무차별하게 전달하는 ‘의미 없는’ 행위가 노여울 때도 있다. 안부를 전하려면 남의 소리로 도배하는 것보다 자신의 살아 있는 한 마디가 바람직하다. 안부도 띄엄띄엄 해야 반가운 법인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분별없이 보내는 글은 반가움보다 반감을 사게 된다.


오늘도 긴 글들을 받고, 애써 외면하려는 내 의지를 비집고 홍수 속에서 걸려 든 글이 있었다. 재빨리 닫기를 하지 않고 지체하는 사이 한 문장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정녕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느냐는 것이다’

아차. 나는 아킬레스 근을 다친 것처럼 찌릿했다. 나의 많은 약점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을 선뜻 내집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성격도 아닌데,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오게 한다. 의무적인 날에는 기꺼이 표 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은 냉랭하고 여유 있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기를 희망한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요즘 세상은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해서 차라도 마시는 일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경사스런 잔치를 해도 외식으로 해결하고 친척들조차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문안도 조문도 집으로 찾는 것은 당사자를 힘들게 한다 해서 모두 병원이나 영안실에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에도 여전히 아주 쉽게 이웃을 초대하거나 드나들고, 왁자지껄 음식을 장만하여 나누며 친분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함양 산골에 황토집을 짓고 사는 내동생과 올케는 입만 떼면 놀러오라고 한다. 와서 고기나 한 번 구워 먹자고 한다. 와서 황토방에서 지친 몸들을 지지고 가라 한다. 와서 집 앞 저수지에 비치는 달구경 하라고 한다. 사계절 언제나 용추폭포의 놀라운 풍광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부부가 박을 켜서 만들어놓은 바가지 하나 씩 가져 가져가라 한다. 거창읍으로 출퇴근하는 맞벌이부부가 손님치다꺼리를 어떻게 하려나 듣는 내가 더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초대의 말을 내던지는 바람에 자그마한 동생네 집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형제자매들뿐만 아니라 동생부부와 인연이 닿은 지인들이 버거울 정도로 발걸음을 했다. 퇴근 후에나 휴일에 직장일보다 더 많이 일하는 그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로서는 보고 있기에도 안정이 안 되는 삶의 방식이라고나 할까.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닫힌 아파트에 사는 나는 생활 자세도 벽을 단단히 쌓아 다른 사람의 침입을 막는 듯한 갇힌 가정생활이다. 좁으나마 툇마루가 있고 마당도 있고 마당 지나서 저수지가 보이는 열린 집에 사는 동생네는 사람들을 향해서 마음도 온통 열려 있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정신의 열림이고 나눔이리라. 일 년 열두 달 가봐야 명절 쇠기나 제사 지내기 같은 의무적인 만남만 내집에서 이루어진다. 이벤트를 계획하고 만들어 사람들의 초대라고는 없는 내집은 참 이기적인 공간이 되었다. 너도 나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다보니 인간생활이 점점 삭막하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비록 내가 혼자 사는 내집이라고 하더라도 내 한 몸만 편한 집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오늘 불현듯 하게 되었다. 내동생과 올케처럼 떠들썩하게 사람을 불러들이지는 못할망정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이라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좋은 글’ 홍수라고 투덜거리던 나는 홍수 속에서 건져 올린 한 문장이 무척 고마웠다. ‘무조건 닫기’, ‘절대 안 돼’하는 내 강퍅한 사고를 멈추어 쉬게 하고, 넓혀주는 사유의 시간을 갖게 했다. 어떤 일이든 여지를 남겨 두는 여유와 수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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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초 2014-11-26 23:20:23
멋진 글입니다. 공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