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살이
어렵살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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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니까 40년이 넘은 이야기다. 쌀이 귀하던 날들이었다. 어머니는 어렵살이 구한 쌀을 안방 깊숙이 넣어두고선 아버지와 막내 자식의 밥그릇에만 조금씩 섞어 주었다. 아버지는 대개 밥을 남겼는데 그렇다고 그걸 내가 먹을 수는 없었다. 다시 아랫목에 묻었다가 아버지가 그 다음 끼니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명절이 아닌 날에 하얀 쌀밥을 먹을 때는 동네에 초상이 난 날이었다. 경사스런 날인 동네 결혼식에는 쌀밥보다 맛있는 떡국을 먹었다. 어머니는 초상이 난 집으로 가서 일을 거들어주고 밥을 얻어와서 우리를 먹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쌀밥 그것 쯤 안 먹어도 괜찮았다. 문제는 도시락이었다. 철부지 아이들이란 무자비하다. 꽁보리밥을 대놓고 먹다가는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이에 아버지는 일찍이 나에게 속임수를 보여주었다. 도시락 속에는 보리밥을 담고 윗 부분 겉에만 쌀이 드문드문 섞인 비교적 흰밥으로 살짝 도배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일은 아버지가 직접해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아버지가 밥을 남겨야 되고 적은 양으로 기술적으로 도배를 하기는 아버지가 능했으니까.

그러면서 아버지는 밥을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숟가락을 수직으로 찍어서 차곡차곡 퍼먹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당부를 잊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먹을 때는 숟가락을 수직으로 해서 밥을 퍼서 먹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 밥은 때깔이 나지 않았다. 쌀이 섞였다고는 해도 보리쌀에 비해 쌀이 적다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밥색이 거무틱틱했다. 보리쌀이란 식으면 더 거무스름해지니 드문드문 섞인 쌀이 그것들까지 표백을 할 수는 없어진다.

어느 날엔가 늦봄이었지 싶다. 부모님이 식전부터 티격태격 다투느라 도시락 싸기를 도와주지 못했다. 어머니가 대충 꽁보리밥에 반찬으론 생된장을 반찬통에 붙여주면서 획 던지다시피 도시락을 주었다. 눈치가 재빠른 나는 김치라도 넣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성질 급한 어머니의 주먹질이 날아올 것이었다. 반찬통에 누렇게 붙은 그것은 얼핏 보면 똥 같아 보기가 좀 그랬다. 또 달리 보면 노랗게 잘 삭아서 달콤해보이면서 먹음직해보였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사건은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침에 도시락에 아버지 밥으로 도배를 안 한 일은 깜빡하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맙소사! 밥은 식어서 소나무 껍찔처럼 시커멓고 된장도 공기가 들어가서 그랬든지 짙은 회색으로 퍼져있었다. 나는 급우들 볼새라 얼른 뚜껑을 닫았다가 도로 열었다. 배가 고파 먹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호시탐탐 나를 놀릴 거리를 찾고 있는 급우들을 경계하며 긴장으로 눈을 뱅뱅 돌리며 밥을 먹는 중이었다. 밥과 밥찬 모두 시커멓긴 해도 맛있었다. 배가 고팠으니까.

너무 맛있었을까. 긴장이 늦춰진 틈에 기습을 당했다. 앞쪽과 좌와 우는 눈알을 돌리며 경계하고 있었는데 정수리 위까지는 도저히 커버할 수 없었다. 눈이 정수리에 없으니까. 신흥 농사기법인 하우스재배로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있는 집 아들인 한 녀석이 책상 위로 올라가 내 정수리 위에서 내 도시락의 꼬락서니를 보고 말았다. 도시락의 모양에 녀석은 지가 더 놀랐든지 책상 위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와아!! 순 쌔까만 꽁보리밥에 쌩된장이다!!”라며 소리쳤다. 나는 녀석보다 더 놀라 도시락 뚜껑을 닫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못하고 멍청히 앉아있었다. 내 도시락은 그 꼴을 하고서 삽시간에 몰려든 급우들이 쏘아되는 눈총을 받고 있었다. 너무 창피하니까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마 내 표정도 도시락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후로는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교문 밖으로 나가 둑이나 잔디밭 같은 적당한 곳에서 먹었다. 혼자 먹진 않았다. 나는 스스로도 이해 못 할 조직력으로 이미 이학년 때부터 요즘말로 하자면 소위 일진이었다. 항상 나를 따르는 급우들이 열 명 정도는 있었다. 그 급우들을 데리고 둑이나 잔디밭에서 밥을 먹으면 부잣집 아이들이 맛있는 반찬을 주었다. 나중에는 하얀 쌀밥도 나누어주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 그 따위로 외치던 그 녀석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혹시 녀석은 나를 상처주었다는 생각에 간혹 괴로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잘 살아가고 있을까. 만일 조금이라도 괴로워하고 있다면 지금 내 마음을 전해 주자. 이렇게 오래도록 내 유년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진정 고맙다. 이 추억이 없었다면 내 유년의 기억이 없고, 결국 내 유년이 사라질 뻔했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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