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가 가정보다 우선 멈출 수 없는 열정 계속
봉사가 가정보다 우선 멈출 수 없는 열정 계속
  • 글/이경화·사진/이용규기자
  • 승인 2014.12.02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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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봉사의 길을 걸어온 진주상록회 전직 회장 양태석씨

▲ 양태석 전 회장은 “KT에서 명예퇴직은 했지만 상록회에서 봉사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고 했다.
대한민국 자생 봉사단체인 진주상록회의 전직 회장이었던 양태석(56)씨는 2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처럼 항상 주변 사람들 모르게 숨은 뜻이 참된 봉사의 의미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양씨는 “1990년 KT산청지사에 입사하여 그동안 24년간 요직을 두루 두루 거치며 게으름 피우지 않고 근무해왔으며 부끄럼 없이 달려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4월 30일 명예퇴직을 하고 나서도 진주상록회만큼은 자신의 재산 목록 1호로 생각하고 지금도 전 직 회장으로서 자문역할도 하는 등 꾸준한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은 돈만 갖다 주면 아내가 살림은 꾸려 나가겠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26년이 넘도록 봉사단체 생활은 누구나가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돈에 얽매이지 않고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맘, 내가 조금 쓰고 봉사한다는 자세로 굳건히 활동하니 아내도 나를 지지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남편의 역할은 100점 만점에 약 20점 정도 아마 그 정도 밖에 안줄 것 같은데 가정보다 운명적으로 상록회를 더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양태석 전 회장과의 일문일답,

-상록회 전 회장님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 좀 해달라
▲상록회는 대한민국 자생 봉사단체 1호로 알고 현재 26년간 활동하고 있다.
상록회 강령으로는 ‘1.내 마음을 믿는가. 2.부끄럽지 않는가. 3.남에게 무엇을 하였는가’를 항상 나의 마음속에 가지고 다니며 26년간을 생활하여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봉사자의 길을 많이 걸어도 왔다. 그것도 일순간 모두가 홍보의 시대라 상록회도 하는 일을 알리고 관에 협조도 요청하고 그렇게 되었다. 그때는 저의 맘도 아팠다. 정말 저는 상록회 만큼은 나의 재산 1호로 꼽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전직 회장으로서 자문역활도 하며 활동하고 있다.

-학창시절 때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나
▲저는 학창시절은 아픔을 너무 많이 겪어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누구는 뭐가 되고 싶다. 또 누구는 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희망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아픔과 고통속에서 고등학교를 겨우 마치자마자 사회의 1인으로써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다.

-청소년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아니면 동네 형, 동생 친구들의 모임 또한 왕성하게 이루어 나왔다고 자부한다. 부모님의 배려 덕분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지냈다. 청소년 시절 만큼은 미련이 없다.

-KT 직업을 택한 이유 말씀해 달라
▲저는 정말 어렵게 지금의 아내와 연애 끝에 부모님의 승락으로 결혼을 하였다. 처가집의 장모님 장인어른 모두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는데 결혼 당시 나의 직업은 주유소 주유원이였다. 단지 주유소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곱게 키운 딸을 이런 청년에게 준다는 부모님의 말을 본인 저가 이해를 하고 결혼하고 제 2의 직업을 찾은게 KT였다.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행정경험·노하우 등 축적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말 본인은 37년간 직장생활을 통해 희노애락을 모두 다 겪었다. 선배님들의 배려, 후배님들의 성원, 동료들의 단합, 아 이것이 조직의 힘이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받은 만큼 돌려 주어야 한다는 나의 철학 또한 마음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정말 자신있게 이야기 드리는 것은 게으름 피우지 아니하고 37년의 직장생활에 하나의 부끄럼 없이 달려왔다고 자신한다.

-KT직장에서 특별명예로 퇴직한 소감은
▲직장의 퇴직이란 말이 정말 아픔, 아니 기쁨, 돌아서면 생각나는 그러한 기분이였다. 저는 퇴직하는 전년도에 다리 골절상으로 일년 열두달 사이 약 5개월을 근무하고 한해를 넘겼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 지극정성 아내의 내조로 아픔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올해 4월 30일 특별 명예퇴직은 저에게는 행운이였고 앞으로도 꾸준한 KT맨으로 더욱 거듭 날 것이다. 물론 나만이 아니고 가족과 나를 아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겠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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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생 봉사단체 1호 상록회
봉사활동 26년간 지속해 보람 느껴

24년 일한 KT에서 특별명예 퇴직
‘오늘의 열정 내일의 희망’ 회고록 출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나의 철학
봉사 지지해준 아내, 두 아들에 감사
진주시에 상록회 회관 짓는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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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상록회 단체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역 봉사단체이다. 진주에도 봉사단체가 많은 줄로 알고 있고 자원봉사단체를 진주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저는 강력하게 이야기 한다. 후배들에게 “상록회의 활동에 같이하는 회원들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그리고 우리의 태동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고 타 봉사단체에 부끄럼 없이 활동하라”라고 저는 이야기 한다. 일년 열두달 매월 활동하는 참 성실한 봉사단체이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란 단체에 묻혀 빛을 바라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전국 지회가 364개 지회로 활성화 되었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약 60여지회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저희 진주상록회는 경기도 구리상록회와 우호 자매결연을 맺은지 20년이 되어 올해 10월에 경기도 구리에서 자매 2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루었다.

-상록회가 도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도민에게 조금이나마 봉사단체로서 부끄럼 없는 단체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희 상록회도 예전엔 도 지부가 있었고 지회가 활동하고 그 위에 중앙회가 있었다.

현재 경남도에는 진주, 삼천포, 김해, 김해여성상록회 이렇게 4개의 상록회가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진주의 활동이 도의 활동으로 알고 저희들은 열심히 주어진 일년 사업계획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 모범적인 단체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도민에게도 봉사하는 훌륭한 단체로 우뚝 서겠다.

-회원들이 바라보는 양태석은 남을 많이 도우고 의협심도 남달리 뛰어났다고 하는데
▲조금 과분한 이야기로 듣겠다. 물론 본인이 1988년 입회하여 사무국에 10여년 동안 요직을 두루 두루 거치며 1997년 회장에 피선되기까지 열정을 다했다. 가정보다 상록회 활동을 우선시하며 활동하였기에 회원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로 알고 있다. 현재 선배님들은 진주상록회 특우회를 조직하여 또 다르게 저희 본회를 지원해 주고 계신다. 항상 선배님들의 활동에 찬사를 보내며 선배님들이 해 오신 활동에 부끄럼없이 지도, 리더하고 있기에 나온 말로 알겠다.

-사회봉사에 뜻을 갖고도 길을 몰라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 같으면 봉사단체 생각이나 하겠는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봉사 활동은 쉽지 않은 판단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사 살아가며 즐거움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단체가 봉사 단체라고 주장하고 싶다. 없으면 없는데로 있으면 있는데로 상록회 활동을 하다보면 기쁨이 더 많다. 상록회에 오셔서 활동해 본다면 정말 살아 숨쉬는 봉사단체가 진주 상록회이다.

-봉사단체의 전문성을 통해 우리 사회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제가 1997년 진주상록회 제16대 회장시절엔 봉사단체로 구성된 진주시민단체연합이 조직됐다. 당시 경상대 박중춘 교수님께서 리더를 하시고 각 단체장들은 공동대표로서 활동을 하며 어둡고 소외된 지역을 찾아 봉사활동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 모임이 현재 시에서 관리하는 자원봉사단체인 걸로 판단된다.

▲ 1988년 입회하여 26년 동안 진주상록회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양태석 전 회장의 1997년 회장 취임식때 모습.
-그동안 상록회 회장 재임때 특별히 좋은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가 회장 재임시절 제일 좋았던 것은 진주교육대학교 다솜상록회를 탄생시킨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전직 경남도지부장님을 다년간 역임하신 김영대 지부장님과 진주교육대학교 음악대 김명표 교수님과의 두터운 유대관계로 인해 지도 교수님으로 모시고 동아리 다솜상록회를 창립했다. 2014년 올해 제 22회 무궁화환경캠프를 성황리에 치룬 행사는 다솜상록회의 활동이 다반사이다.

-이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울 때는
▲제가 진주상록회 입회할 때 아들이 두 살이였고. 입회를 하고 이듬해 둘째를 얻었다. 아들 둘이 아빠가 하는 봉사 활동에 어린 저네들이 무엇을 알겠나 했다.
나의 활동은 지속되고 올해 22회로 마무리한 무궁화 환경캠프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캠프에서 놀면서 좋은 것만 보아왔다는 것. 그래서 착하다는 것. 주어진 본인의 업무에 충실하는 29살, 26살 두 아들이 착하게 자라주어 너무 고맙고,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해준 아내의 내조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나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은 돈만 갔다 주면 아내가 살림은 꾸려 나가겠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봉사단체 생활은 누구나가 모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힘과 용기, 지금 이시간도 변함없다. 돈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 내가 조금 쓰고 봉사한다는 자세로 굳건히 활동하니 아내도 나를 지지해 주었다. 저는 신혼부터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며, 큰 가게 부담 없이 생활하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역활은 100점 만점에 약 20점정도 아마 그 정도 밖에 안줄 것 같은데 가정보다 상록회를 더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본인이 가족에 대한 배려심이 강하다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
▲아무래도 상록회 생활을 충실히 하려면 제일 먼저 가족이 동참을 안 해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아내 최복자, 아들 신일, 희준 정말 봉사할동하는 데에 같이 해주었다. 사무국장 재직시절 가족이 같이 나와 회관청소를 하고 나면 그날은 우리 가족의 회식하는 날로 나는 그렇게 가족간의 유대를 유지해 왔다.
이젠 제가 일선에서 퇴직을 하고 아들은 멀리 서울, 부산에서 아내와 난 고향인 진주에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기에 더더욱 가족의 힘을 느낀다. 아내와 아들이 하는 일에 최대한 지원해 주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다.

-회고록을 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어느 누구에게도 의논도 안하고 4월 30일 퇴직을 하고 자료들을 모았다. 3개월 만에 책자를 편집하고, 책자가 7월 30일날 나왔다. 나도 처음엔 실감이 안났으나 ‘오늘의 열정 내일의 희망’이란 회고록을 보고 만족했다. 난 책자 한권을 들고 집안의 어른을 찾아 소상히 말씀을 드렸다. 하시는 말씀이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하시며 저의 등을 두들겨 주셨다. 사실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 말씀을 듣고 힘을 얻었다. 각 단체 봉사자들의 칭찬과 격려의 말씀들 또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의 전화 위로 또한 너무 감격이였다. 요즘 정말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맘으로 하루 하루를 보람되게 지낸다.

-자신이 지금까지 못 다한 아쉬움이 있다면
▲많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욕망과 베풀고 싶은 마음, 이것들을 못했지만 저는 영원한 상록회맨, KT맨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봉사활동에 충실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퇴직했다고 대우가 달라지는 옛 동료의 한마디의 말에 너무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욱 배움의 자세로 악착스레 봉사활동을 할 것이다.

-가장 보람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의 욕심인가 모르지만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고 37년간의 직장 생활 속에 26년간의 상록회 활동이다.
한가지 더한다면 못난 신랑 만나 내조를 잘해준 아내와 착한 두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반면 힘든 점이 있다면
▲솔직히 청소년시절 절 속에서 저는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3 시절 칠암동에서 뭇매를 맞고 집으로 돌아온 난 그날부터 불행의 나날이였다. 학창시절 내내 학우들의 도움으로 말이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 그 친구들에게 하고 싶다.

-앞으로 주 사업계획 및 목표는 무엇인가
▲특별히 하고 싶은 사업은 솔직히 없다. 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재벌가도 아니고 지금 이대로 꾸준히 봉사활동으로 진주시에 상록회 회관을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이 저의 목표이다.

-건강을 위한 취미생활은
▲현재 저의 건강은 아주 양호하다. 오전엔 골프연습장에 나가 즐기고 오후엔 집 뒤 석갑산에 올라 운동하면 하루의 해가 저문다. 특히 주말이면 아내와 같이 하는 시간이 취미 생활이다.

-기타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을 접은 상태인데 나름 나의 취미생활과 함께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끝으로 교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무궁화 환경캠프 행사를 통해 많은 선생님들과 대화의 장을 많이 했다. 저희 상록회에서 무료로 하는 행사인 만큼 교육청을 통하고 선생님께서 추천을 하여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을 우선으로 선발한다. 이 아이들이 활발하게 친우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사하고 부탁드리고 싶다.

-가족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나의 사랑하는 아내 최복자님 못난 신랑 만나 아픔도 겪고 고통도 겪고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 안하고 묵묵히 남편 뒷바라지 하여준데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 두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착하게 키워줘서 고맙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살아생전 지극정성으로 대해준 당신께 남편으로서 똑부러지게 할 말은 없지만 5남매 형제간의 우애 또한 당신이 잘해주었고 앞으로도 우리가 있는 한 지켜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욕심이 너무 심했나 하면서도 고맙게 생각한다.  글/이경화·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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