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의 기준
‘선진’의 기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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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인생론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는데, 수강생이 많은 관계로 기말 평가에 언제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비교적 답하기 쉬운 단답식 문제를 내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선진 사회의 진정한 기준은 무엇인가하는 취지의 문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해봤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합리성공공성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답으로 적어주었다. 강의 도중에 여러 차례 강조했던 내용이라 나는 내심 흡족했다.(이것들은 현대 독일철학과 프랑스철학의 핵심개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연이지만 어떤 원로 목사님 한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었는데, ‘선진 한국통일 한국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평소에 내가 강의시간에 강조하던 바라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국가사회라는 것이 인생의 한 결정적인 조건인 한 우리는 몸담고 있는 국가의 상태나 수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른바 GDP1인당 국민 소득이니 하는 지표의 달성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OECD 회원국이라고 해서 다 선진국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은 삶의 질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거의 혁명적 수준의 의식개조, 인간개조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물어가는 2014년의 한국사회를 보면 선진국이라는 것은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는 불합리, 무질서, 이기심 그런 것들이 이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언뜻 떠오르는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도로변 주차다. 흔히 거론되는 소방차의 진입방해는 말할 것도 없고 통행에서의 불편과 위험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불편과 위험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려서 대부분은 그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득 지난 1년간 거주했던 미국의 보스턴이 생각났다. 거기도 오래된 도시라 주차난은 심각했고 따라서 길거리 주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유료화 되어 있었고, 그 허용 시간도 길어봤자 2시간이었다. 조금만 어겨도 칼같이 딱지가 붙게 되고 과태료의 납입은 엄청나게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것이 훨씬 더 편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그런 것이 합리성이고 공공성이다. 나의 약간의 불편을 모두의 일반적 편의를 위해 감수하는 것, 그런 것이다. 세금도 그렇다.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규모의 탈세가 있다. 그래서 모든 수익체에게는 세무조사라는 것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떳떳하다면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른바 선진 사회에서는 성실한 납세자가 실질적으로 각종 혜택을 받게 되고, 불성실한 납세자, 탈세자는 재기 불가능할 정도의 불이익을 받게끔 제도적-구조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출도 납세실적과 연동되는 그런 구조) 그렇게 마련된 세금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효과적으로 집행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연말이 되면 집행잔액의 처리를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치운다. 그렇게 낭비되는 피같은 세금이 아마도 천문학적 규모일 것이라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짐작하고 있다.
 
그런 불합리는 우리들의 생활주변 곳곳에 만연돼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가 개인적 사정이 생겨 다음 주는 휴강!’이라고 하면 학생들은 !’ 하고 뛸 듯이 기뻐한다. 바로 그 수업을 위해 자신이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불합리가 어디 있는가. 예전에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객원으로 지낼 때 전국적으로 동맹휴업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철학과목의 노교수가 여러분들의 연대와 투쟁의 의미를 존중하기에 다음 주는 휴강합니다.”라고 했지만 기뻐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뜻밖에도 모두가 의논하여 그 다음 주는 학교 밖 교회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이 이루어졌다. 모두들 그 색다른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였다. 내게는 그것이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미국과 독일이 선진국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들을 따라잡아야 하고 이윽고는 넘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각고의 노력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것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언젠가, 전국의 도로에서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이 공공의 합법적 주차공간으로 들어갈 때 그때 나는 비로소 선진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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