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Ⅳ)
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Ⅳ)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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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중국의 사상은 춘추전국 때 모든 분야에서 창건되었고, 창건과 동시에 정립되었다. 말하자면 창건과 번영이 한 시대 안에 공존된 것이다.

바로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배출한 전성시대였다. 원시 시기의 단편적인 정치사상은 선구에 불과하였고 전란 속에 영일은 없었지만 무더기로 꽃피운 사상이 있었으니, 선진사상(先秦思想) 자체가 정치사상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철학의 전성기를 이루기까지, 양계초는 정치·사회·학술 등 세 가지 배경에서 열여섯 가지의 원인을 분석했는데, 그 중 봉건제도의 붕괴, 변방민족의 동화, 이적(夷狄)의 침략, 대도시의 형성, 공상업의 발달, 교통의 발달, 신노예계급의 발생, 지식의 평균적 발전, 열국의 지식의 교환 활발, 서적의 유행 등 요인을 들 수 있다.

주나라가 동천(東遷, BC 771)해서 진시황(秦始皇) 즉위까지(BC 221) 5세기에 걸친 춘추전국 시대는 격력한 사회의 변천에 발을 맞춘 분방한 사상의 자유시대로서 급기야 제자십가(諸子十家)의 유별을 형성하였으니, 그중에는 공자의 유가가 가장 선하(先河)를 일구면서 보수적이었는가 하면 기타 학파는 거의 반유가적이고 혁신적(革新的)인 흐름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두드러진 개성으로 후세에 공헌한 바 있는 유가·도가·묵가·법가 등 사가(四家)를 중심으로 정치사상을 고찰키로 한다.

儒 家 : 인치(人治)·덕치(德治)·예치(禮治)와 세계평화주의 등을 공통적인 골자로 하는 유가는 공자·맹자·순자순으로 그 중심사상을 요약키로 한다.

중국 고대문화를 집대성한 공자는 사상적으로 요·순·우·탕·문·무·주공을 계승했고, 그 근본은 인생을 위하여 인생의 사랑을 펴는 인(仁)에 두었고, 정치의 근본방법은 옳음[正]에 두었다.

정치는 인치(人治)지 결코 권력에 의존하거나 법에 근거하는 그런 강제성을 배제하고, 내재적인 덕(德)을 닦거나 숭고한 천도를 원칙으로 섬기는 윤리적이며 양심적인 기초 위에서 복고적인 기본 태도로 그 정론을 전개했다.

이처럼 법천(法天)·상덕(尙德)·존현(尊賢) 등의 정신적인 배경만 강조할 뿐 아니라 정치의 실제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것을 지적했다.

먼저 혼란과 월권을 방지코자 정명(正名)을, 남에게 몸으로 모범을 보여 질서를 얻고자 정신(正身)을, 국민을 영도하는 현명한 인재의 천거, 즉 거현(擧賢) 등 기본적인 정치방법을 강조했고, 나아가서 민중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예악(禮樂)을 통해서 미풍양속을 유지케 했고, 부국(富國)을 위한 경제정책으로 절용(節用)과 빈부의 차별을 뛰어넘어 공평한 균배(均配), 그리고 오늘의 사회보장제도에 상당한 복지 강화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현명한 영도자를 뽑아 능력을 부여하자는 민주원칙도 제시했지만, 결코 다수결 같은 현대 민주제도 방식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론적인 면에서 중국 정치사상의 최고의 이상은 인간이 서로 질서를 지키면서 서로 사랑하는 대동(大同)에 그 극치를 설정했고, 그 태평스런 사회범주 속에서 늙은이가 안거하고 친구끼리 믿으면서 젊은이를 어루만져 주는 사랑과 믿음이 충만한 환경에서 임금은 임금으로 아비는 아비로, 서로 존경하고 분수를 지키는 질서를 유토피아를 지향하듯 추구했던 것이다.

공자사상이 분화되어 맹자와 순자의 분기를 이루었는데, 큭히 맹자는 공자의 유심주의적인 경향을 계승 발전시켰다. 바로 인정(仁政)이 맹자 정치의 이상이었던 것은 그가 왕도(王道)나 민본(民本)을 주장한 데서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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