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09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1968년 12월 9일 밤 강원도 평창군 계방산 기슭 화전민 이석우씨는 산 넘어 친구집에서 술을 한잔 하는 순간 마음이 불안했다. “아무래도 집에 가야겠어 기분이 이상해”라고 하자 막걸리 한잔 더 하라는 친구의 말을 뿌리치고 일어선 건 이석우씨의 육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 앞 돌담에서 헛기침을 하고 애비왔다 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방문을 더듬 더듬 하여 열자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방에서 튀어 나온 시커먼 사내들과 뒤엉켰다. 순간 궁둥이 한쪽이 뜨끔했다. 칼이었다. “사람살려” 하는 순간 죽을 힘을 다해 사내들을 밀쳐내고 집 앞 계곡에 몸을 던졌다. 산 초입까지 단숨에 달려 친구집에 들어서자 숨 돌릴 새도 없이 외쳤다. “무장간첩단 공비(共匪) 5명에게 칼을 맞았소”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친우와 같이 집으로 돌아와 확인 결과 큰 아들은 살아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등짝에서 피가 솟았고 육군 헬기로 이동 병원으로 가는 동안 목이 터져라 고함을 쳤다. “이놈아 자면 죽는다. 자면 죽어” 둘째 아들 아홉 살 승복(속사초2)이는 공비들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했다가 입이 찢기어 죽었고 셋째 승수(7), 딸 승자(4)와 아내도 모두 몰살을 당했다. 장남 학관만 공비 칼에 난자(36) 당하고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듬해 섣달 그믐날 아버지와 학관은 아버지 손을 잡고 뒷산 운두령에 올라 봉분 넷이 나란히 누워있는 무덤 눈 덮인 산소 앞에서 죽은 가족 이름을 부르다 아버지는 실신하여 쓰려졌다.


46년이 지난 2014년 8월 24일 이석우씨는 운명했다. 그의 나이 여든셋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나 누구 한사람 찾는 이 없었다. 이씨는 그 일이 있고 40년 가까이 정신질환으로 시달려 자다가 광란 등 행동을 했고 붉은 색만 보면 피를 생각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초등학교마다 교정에 승복이 동상은 이제 시골학교 폐교로 인해서 철거됨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이승복 기념관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10여년 전에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승복이의 외침이 가식된 조작(造作)이었다고 우기는 적색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대법원이 두 번이나 사실이라 판결했는데도 지금까지 한마디 사과를 한적이 없다. 이석우씨가 숨지기 전 자기 사진 등 흔적을 불태워버려 영정 사진 한 장 없이 주민등록증 사진을 복제하여 사용했다. 이승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이씨 장례식장 사진이 세월의 무정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씨가 죽은 후 이렇다 할 조문객도 없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천막을 깔고 앉아 식사를 하고 고인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세월을 탓할까 분단을 탓할까 마지막까지 슬픈 인생의 연속이었다. 승복군 추모식은 12월 9일에 한 단체에서 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