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경기북부
여기는 경기북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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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가끔 나의 '현주소'를 의식할 때면 신기해서 깜짝깜짝 놀란다. 경상남도 끄트머리 강변마을 초가집에서 태어난 내가 어쩌다 천리나 먼 이곳 경기도 북부에 살게 됐는가 해서. 신안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진짜 너무 너무 작은) 섬에서 태어난 남편을 보면 어떤 때는 의아하기까지 하다. 내가 어쩌다 저 짜리몽땅한 고집쟁이랑 살게 됐지 싶어서.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 둘을 볼 때면 정말이지 꿈만 같다. 어쩌다 둘이었다가 넷이 됐구나,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지금 연말이다. 며칠만 있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아직 올해의 나이에도 익숙하지 않았는데..... .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현주소라는 건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소를 이르기도 하는 것이지만 내 인생의 현주소라는 의미에 더 무게를 둔다. 내가 살고 싶은 나이가 팔십 중반까지다. 십대까지는 그야말로 천지분간 못하는 아이였으니 접어버리면 절반 넘게 살았다. 지나간 날들은 접어두고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새삼 그런 물음들을 붙들면 우선 내가 타고난 낙천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중요한 점이다.

흔히 우리 나이쯤의 나이라는 건 생각하면 서글프고 쓸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그게 없다. 그렇다고 세월이 가는 것에 유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가면 가는가 보다 오면 오는가 보다 한다. 바빠서 가는 세월 잡고 시비걸 시간이 없다. 다만 한가지 줄기차게 소원하는 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장하 선생님이나 이케다 선생님처럼 칠십 살, 팔십 살이 넘도록 공부하며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은 돌아가실 때까지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고 들었다. 물론 그 분의 치열했던 정치가로서의 여정은 생각할 때마다 고맙고 존경스럽다. 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도 포기없는 도전으로 조국의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끝내 대통령에 당선되어 은근과 끈기의 인간정신을 증명해냈다. 그 분의 부인이신 이휘호 여사님의 남편 내조에 대한 인생여정도 들을수록 본받을 점이 넘친다. 나도 죽을 때까지 책을 보며 나날을 공부하며 또한 나날이 지혜를 생산하며 살고 싶다.

김장하 선생님은 재산을 불리는 일을 극도로 삼가하시며 평생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계신다. 진주에서 남성당 한의원을 경영하시는데 선생님은 연세는 드시지만 나날이 아름다워지시는데 삼층짜리 병원 건물은 낡아서 흐름하여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뿌듯하기도 하다. 마음이 아플 때는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이 흐름한 건물에서 진료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서고 뿌듯할 때는 바로 그 점이 자랑스러워서 그렇다. 자나깨나 돈돈돈 하는 판에 축재를 삼가하시는 그 모습이 너무 감사하다. 우리 제자들이 책을 출간하여 보내드리면 꼭 읽으신다. 진짜 놀랍다.

이케다 선생님은 일본인이다. 폐병을 앓아 30살을 넘기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뒤집고 지금 80살을 훨 넘기고 살고 있다. 전후의 열악한 환경을 딛고 성장하여 지금은 종교지도자로 활동한다. 선생님 역시도 지금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신다. 다른 석학들도 좋아하지만 독일의 괴테와 중국의 루쉰을 더 좋아하신다. 선생님이 인용해준 괴테의 '어떻게 하면 오랫 동안 즐거워하며 살 수 있을까. 그러려면 늘 가장 탁월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미지에 찬 숭고한 것은 많은 것을 가져다주고 때를 초월해 영원히 존재한다'는 구절은 읊을 때마다 새롭다.

꼼꼼이 톱아 보면 본받을 분 들이 더 많을 것이지만 이 세 분만 생각해도 나는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부조리해도 불만없이 살 수 있겠다. 때론 삶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가 말이다. 그래서 또한 매순간 얼마나 두려움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가. 아이들 걱정, 취직 걱정, 집 걱정, 부모님 걱정, 사고 걱정, 걱정 걱정....... . 이런 때에 성실하게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면 그래도 살만해지는 것이다. 당장에 하는 고생도 뭐 이 까짓것, 하며 웃으며 넘기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하신 것처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더 밀도 있게, 더 진정성 있게 사랑하게 된다. 말 안 듣는다고 눈을 흘기던 딸을 오히려 꼭 안아주며 나에게 태어나주어 고맙다고 말해보면 사는 재미가 봄날 새순처럼 찬란하게 솟는다. 고집 센 남편도 타고난 천성이겠거니..... 그냥 봐 주게 된다.

세 분 선생님들처럼 내겐 큰 사명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게도 내게 걸맞는 사명이 있을 것이다. 하고 보니 내게도 오래된 꿈이 있다. 잊고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조국의 선후배에게 선물하고 싶다............. 많이 쑥스럽다.ㅋㅋ 그래도 죽을 때까지 내 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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