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Ⅴ)
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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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맹자 또한 국가 구성의 3대 요소를 영토 ‧ 국민 ‧ 정권에 두었으며, 영토에 있어서는 전쟁으로 통해 무자비한 확장을 반대했지만, 국민은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로 보고 절대 존귀시했도, 따라서 정부나 군권은 부차적으로 보았다.

정치를 폄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이 있었으니, 국민의 존재를 절대 존경하며 민의와 여론을 존중하는 민본(民本) 혹은 민귀(民貴) 사상을 그 으뜸으로 칠 수 있다. 바로 국민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거와 동격시했다.
그러나 맹자에서 불과 같이 인재를 임용함에 있어 비록 여론을 존중했지만 결정은 역시 집권자에 있는 만큼 오늘의 민주원칙에 비한다면 다만 「인민을 위한(fir the people)」민본일 뿐 「인민에 의한(by the people)」민본은 될 수 없었다.
또한 공리(功利)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왕도(王道)를 강조했는데, 왕도는 백성을 보호하고 또 백성을 부양하는 데서 비로소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맹자는 애매하게 인정(仁政)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수탈없는 자연 안정책을 비롯하여 경세(輕稅) ‧ 박부(薄賦) 정책, 상업과 교역의 필요, 교육의 보편화, 군민(君民) 간의 혼연일체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정책 등 구체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비록 민주(民主)는 아닐지언정 민본사상의 주역자인 맹자에게 폭력으로 다스리는 패정(覇政)을 업신여기고, 더구나 폭군을 발본하는 혁명사상이 강력히 맥동하고 있으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 엄청난 존비 관계를 깨고 그것이 어질지 못하고 외롭지 못할 때 절대의 지위인 임금을 타도할 수 있다는 혁명론은 유심론(唯心論)으로 일관되어 온 맹자의 정치사상에게는 저돌적인 도전인 것이다.
맹자보다 늦게 전국 말년에 나타난 순자(荀子)의 정치이론은 맹자와 더불어 그 출발점과 전개과정은 거의 대립되고 있다.
인간의 거짓되고 사나운 본성과 욕망은 상쟁과 혼란을 빚는다는 현실에 기점을 두고 그 예치론(禮治論)을 표방한 순자는 인류가 본능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무한한 물질욕과 거기서 만족하지 못할 때 야기되는 쟁탈의 본능과 사회란 테두리가 복잡할지라도 거기서 이탈할 수 없다는 사회적 동물이란 현실성, 생존하는 사회 속에서의 물질 분배의 수요와 규제, 그리고 사회조직 속에 일고 있는 재산과 지위의 불평등성 등 절박한 사회성과 어쩔 수 없는 현실성을 발견했으니, 이러한 발견은 곧 정책 수행에 획기적인 관건이 되었고, 이 관건은 실제 정치에 크게 공헌했고, 그 공헌은 맹자를 능가했다고 평하기에 이르렀다.
맹자가 국가의 구성요소를 세 가지로 본 데 이어 순자는 영토 ‧ 국민 ‧ 법제 ‧ 군주 등 네 가지로 보았는데, 그 중에는 법제가 새로 첨가되었거니와 좀 더 강조한 것은 군주였으니 훌륭한 법이 있어도 나라는 어지러울 수 있지만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어지러울 수 없다고 결국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의 우위성을 역설했다.
따라서 군주의 지위와 권력은 맹자 때의 「군위경(君爲輕)」에 비해선 훨씬 강화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요순의 선샹설 같은 것도 순자에게는 배격당했으니,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복지를 향상시킴에는 뱅성의 근본인 군주를 상화하자는 군본주의(君本主義)를 주장했다. 이는 바로 전제정치의 전야적인 사상이랄 수 있다.


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
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
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강신웅(姜信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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