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와 진시황(秦始皇)
한비자(韓非子)와 진시황(秦始皇)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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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
 ‘사기’의 ‘한비전’에 의하면 한비(기원전 ? ~ 기원전 233)는 한(韓)의 서공자(庶公子)로 태어났다. 한나라는 전국 칠웅의 하나로 꼽혔지만, 국토는 좁고 증원에 위치해 강국인 진(秦)과 초(楚)의 압박으로 그 존립을 위협받고 있었다. 한비는 부국 강병을 위한 학문을 익히기 위해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 순자(순황)의 밑에서 공부했다.

 같이 공부한 사람에는 뒤에 진의 재상이 된 이사(李斯)도 있었다. 한비는 순자의 성악설, 노자의 무위 사상으로부터 철학적 계시를 받고 그 속에서 상자(商子:상앙)의 법(法)과 신불해(申不害)의 술(術) 등을 종합해 독특한 통치 이론인 ‘법술(法術)’을 짜냈다.

 한비는 이 ‘법술’이야말로 부국 강병의 유일한 도라고 한왕(韓王)에게 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한나라에는 천하 통일을 노릴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 한비의 법술을 채용한 사람은 진왕(秦王) 정(政:뒤의 시황제)이었다. 정은 수시로 한비의 저술을 읽고 감탄하여 어떻게 하면 지은이를 만날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한다. 마침내 이사가 계책을 세워 진이 한을 공략하자 과연 한나라는 한비를 사자로 삼아 화해를 청해 왔다.

 진왕은 한비를 불러들였지만 즉시 등용하지는 않았다. 한편, 이사는 예전의 동학으로서 한비의 능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만큼 그가 등용될 경우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 떨떠름했다. 그래서 그는 동료 요가(姚賈)와 함께 진 왕에게 한비를 모함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었다. 이사가 옥중에 독을 보내자 한비는 스스로 독을 마셔 버렸다고 한다. (기원전 233)

그 3년 뒤에 한나라는 멸망하고 다시 10년 뒤 진의 천하 통일이 이루어져 정(政)은 시황제를 칭한다. 시황제의 정책은 전부가 한비의 생각에 연원을 두고 있으니, 사실상 시황제는 한비의 제자인 셈이다.

 ‘한비자’는 모두 55편이다. 한비가 실제로 썼는지 아닌지가 불명확하지만, 전체적으로 법가 사상으로 통일되어 한비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책에 나오는 명언들로는 첫째, 역린(逆鱗)에 닿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용은 상상의 동물로 종종 천자에 비유되는데, 한비자는 이 용이 성질이 온순해 길들이면 사람을 등에 태울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용의 목구멍 아래에는 직경이 1척이나 되는 비늘 하나가 거꾸로 나 있다. 이것에 닿으면 평소에 얌전하던 용이 화를 내며 발광해 사람을 삼켜버린다.

한비자는 이 용을 진언의 상대, 즉 군주에 비기고 있다.

“군주에게도 이 역린이 있다. 이것에 닿지 않는 진언이 가능하다면 우선은 합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한마디가 진언의 어려움을 설명한 ‘세난편(說難篇)’의 결론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윗사람을 노하게 하는 것을 ‘누구 누구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식으로 말한다.

둘째, 수주(守株)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오래된 방법을 고집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무 그루터기를 지켜서 토끼를 기다린다’로부터 나온 말이다. 송나라에 사는 어떤 남자가 어느 날 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토끼가 튀어나와 옆에 있던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 남자는 힘들이지 않고 토끼를 얻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밭가는 것을 그만두고 매일 그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토끼가 언제나 그렇게 튀어나올리 없다. 그 남자는 나라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비자는 이 비유를 들어 고대성인의 방법에 집착하는 유가들의 어리석음을 조소했다.

셋째, 여도(餘桃)를 먹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먹다가 만 복숭아를 먹이려 했다는 것으로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위나라의 영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미자하는 수시로 복숭아밭을 거닐면서 복숭아를 따서 먹었는데 꽤 맛있는 복숭아가 있어서 절반만 먹고 나머지를 영공에게 내밀었다. 영공은 “자신은 생각지 않고 나에게 맛보게 하는구나”라고 말하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미자하의 용모와 안색이 초췌하게 되었다. 영공은 그를 꺼리게 되고 이전의 복숭아밭에서의 사건을 떠올리며 미자하를 욕했다고 한다. “그놈은 먹다 만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미자하의 행위는 하나이다. 그러나 영공의 애정이 증오로 바뀌게 됨에 따라 그의 행위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의 것이 되었다. 군주를 설득할 때에는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군주라는 권력자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도 고려해야 한다라는 의미이다.-‘세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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