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언니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1.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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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나는 언니가 많다. 친언니는 하나이지만 이웃 언니들은 수십 명은 된다. 나이 오십을 넘기고 보니 친언니나 이웃 언니들이나 다 같이 생각되어진다. 오히려 멀리 있는 친언니보다 가까이 살아서 매일 보는 이웃 언니들이 더 살갑다. 김치를 나누어 주네, 된장을 퍼다 주네, 국수를 말아 함께 먹네, 부침개를 해서 나누어 먹네 해서 파이브잡을 하는 나는 귀찮을 지경이다.


내 바로 위 친언니가 환갑이다. 너무 무뚝뚝해서 좀 그렇다. 말이 그러니 인생조차도 별로 상냥하게 안 풀리는 모양이다. 가장 언니를 괴롭히는 문제는 딸 문제. 이미 오래 전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는데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숨겨진 채로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다. 시집도 안 가고 언니의 주변을 맴돌며 서로 불편한 모양이다. 이 언니는 무뚝뚝한 데다 약간 무지하기까지 해서는 돈 많은 형제에겐 꼼짝을 못하고 돈 없는 형제에겐 쌩무시를 하는 통에 맡언니 임에도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더하자니 험담되니 그만하자.

"동생아, 동생아! 이거 무글래?"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서 내려 갔더니 건너편 빌라에 사는 언니다. 염색을 해서 머리까락이 까맣다 못해 감청색이 돈다. 게다가 며칠 전에 '빠마'를 해서 빠글빠글이다. 넘어져도 머리는 안 다칠래나 말래나. "이기 머꼬?" 언니가 내미는 걸 받아 봤더니 오이지 무침이다. 지난 여름에 손수 담근 거라 슈퍼에서 산 거보다는 짜다면서 민망해 한다. "아, 오리지는 짭짤혀야제!" 말해서 언니를 안심시켰다.

몇 달 전에 이사를 와서 반지하에서 혼자 사는 또 다른 언니는 무슨 일만 있으면 달려온다. "동생, 이것좀 읽어봐여, 문자가 왔어." 불행히 이 언니는 한글을 아직도 못 뗐다. 부터 시작해서 보일러 고치는 데는 어디냐, 수도를 안 얼게 할려면 물을 얼마나 털어놔야 되는지까지. 이 언니는 부자집 막내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가 개망나니 같이 술을 마셔대고 주정을 하는 남편 때문에 대접도 못 받고 견디지도 못하다가 갈라 선 언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언니는 머리 허옇게 되어 가지고 이혼했다며 부끄러워한다. 부끄럽기는 할만하면 이혼보다 더 한 것도 해야지.

글을 쓰자고 마음 먹었을 초기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선량하고 올바른 줄 알았다. 대개의 사람들과 똑 같은 비률과 농도로 선량하기도 하고 안 선량하기도 하고 올바르기도 하고 올바르지 않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것은 또한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지만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걸 안다. 다만, 작품에서는 최고의 선량과 올바름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일상에서 심술을 부리는 언니들 보는 때면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글을 쓰는 언니인데...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은 열두 가지라는데...

"내가 이 짓을 안 한다고 안 한다고 하면서 또 해!" 한 달이면 두어 번은 먹거리를 동생에게 택배로 부치는 언니가 있다.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엄마를 볼모로 잡고 이것 저것을 사서 부치라고 성화를 댄다고 이 언니는 불평을 한다. 돈을 부치라고 조언을 하면 해먹고 사먹기 싫어서 그렇게 시장을 봐서 택배로 부치라고 한다고 하니 진짜 환장할 동생이라. 이 언니는 하도 오래 그 일을 계속해서 손에 쥐가 난다고. 에구,사는 게 뭔지.

이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 연세가 70를 넘겼는데 명문 여상도 아니고 '여고'를 나왔다. 여고를 나와서 대학도 못 가고 직장도 못 잡고 별로 잘나지도 않은 남편에게 시집온 게 후회되어 집안에서만 살게 된게 병이 될 줄이야. 전기세를 아낀다고 집안은 항상 깜깜하게 해놓고 산다. 그 깜깜한 속에서 지금 몇 십년을 스스로 갇혀 살고 있다. 남편은 노가다를 하면서 파지도 주워 살고 있는데 두 부부를 볼 때마다 짠하다. 여고가 뭐라고, 차라리 안 나왔으면 삶이 더 풍성했을래나 말래나.

아, 이 언니! 이 언니는 70이 넘은 동생을 장가를 들여야 되는데 짝이 없어 고민이다. 나에게 중매를 서라고 조르지만 나라고 맞춤한 색시감 언니가 있느냔 말이지. 언니의 동생은 그래도 사랑하는 부인을 맞아 금슬 좋게 몇 십년 살다가 몇 년 전에 상처를 했다. 이 언니에겐 숫제 장가를 가보지도 못한 아들이 오십을 넘기고 있다. 내 생각엔 이 아들이 더 급한데 동생만 가지고 안달을 하니 이해가 조금 안 된다. 어쨌든 여자가 귀하다,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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