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1.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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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창문을 포함한 네 개의 벽들이 나를 에워싸고 뭔가 위압적인 분위기 속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하지만 벽이야 그냥 벽으로서 거기에 있을 뿐 그것 자체가 무언가를 어찌할 리는 없을 터. 당연한 이치다. 몇 가지 답답한, 그리고 힘겨운 현실들이 나로 하여금 벽을 벽으로서 인식하게 만들었을 게 틀림없다.
문득 ‘벽’이라는 것이 하나의 철학적인 개념으로서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던 장면이 생각난다. 이 단어를 발설한 것은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였다. 그는 이른바 ‘한계상황’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다. 이를테면 죽음, 고뇌, 싸움, 책임 같은 것. 그런 것을 그는 “우리가 거기에 부딪쳐 난파하게 되는 벽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네 가지 외에도 그런 벽들은 많다.) 그의 이 말은 1970년대의 내 청춘 속에서 한 동안 하나의 육중한 진리로 각인되었다. 아마도 붙잡을 것 하나 없는 청춘의 불안, 시대의 혼돈, 그리고 그것들과 짝을 이룬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무력함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으리라.
그 이후의 40년 세월. 나는 무수한 벽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벽들과의 만남이 곧 인생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벽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벽을 만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요행은 우리 인간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벽과의 만남은 불가피한 필연이다.
그렇다면 벽 앞에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낮은 벽, 얇은 벽이라면 넘거나 뚫을 수가 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우리는 그 벽들을 통과해 간다. 통과한 다음에 뒤돌아보면 누군가가 그 사다리 혹은 해머의 역할을 해준 경우들이 분명히 있다. 벽과 함께 그런 사다리나 해머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인생살이, 세상살이의 큰 매력이자 구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고마운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문제는 그 벽이 넘을 수도 뚫을 수도 없는 경우다. 그것이 그야말로 ‘한계상황’이 되는 그런 경우다. 우리 불쌍한 인간들은 그 벽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난파하고 표류한다. 그 끝에서 누군가는 폐인이 되기도 하고 심각하게 병들기도 하고 더러는 참담한 최후를 맞기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참으로 특이하다. 그리스도는 온몸으로 그 벽에 부딪쳤고 부처는 그 벽을 아예 벽이 아니라고 인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들은 스스로를 거룩한 존재로 승화시켰다. 우러러보아야 할 태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무나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들은 또한 아니다.
우리의 삶에는 실제로 무수히 많은 벽들이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으며 그리고 존재할 것이다. 2015년을 맞이하는 한국사회에도 거대한 벽들이 버티고 있다. 칼을 휘두르는 거대자본과 거대권력, 진영대립과 부정부패. 불합리와 비효율, 배타적인 오만과 편견…. 언뜻 보기에 이 벽들은 어떠한 사다리로도 넘을 수 없고 어떠한 해머로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다. 이것들은 예전의 저 베를린 장벽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저 만리장성보다도 더 높고 견고해 보인다.
우리는 이 벽들에 부딪쳐 속절없이 난파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것들을 향해 날계란을 던져보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모한 도전도 의미가 전혀 없지는 않을 터. 시도는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인간을 지금과 같은 존재로 만든 것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저 불굴의 정신이었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저 {쇼생크 탈출}의 앤디도 한낱 조각도구로 그 견고한 감옥의 벽을 뚫고 나오는 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포기한다면 벽은 언제까지나 벽으로 버틸 것이다. 하지만 도전하는 자에게는 언젠가 그 벽은 조그만 구멍을 허용할 수도 있다. 그 구멍이 넓어지면서 벽은 무너진다.
지금 내 인생도 사방이 벽이다. 하지만 나는 그 벽에 부딪쳐 난파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조그만 바늘 하나를 들고 호부작 호부작 그 구멍을 후비고 있다. 언젠가 나는 이 벽을 통과할 것이다. 신에게 그 허락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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