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향한 자유로운 여행
영혼을 향한 자유로운 여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1.18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민표/경남한국화가협회장

예술 창작활동에서는 인간의 오감가운데 가장 고귀한 감각기관으로 시각의 도구를 이용하여 이 세상의 모습을 체험하려는 현실적인 욕망과, 다시 이로부터 눈을 돌려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영적 지향으로 크게 대별된다.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눈과 체험하고 관조하는 눈의 두가지 모험적인 기능으로 시적인 상상력에 근거힌 감동적인 창작물이기도 하다. 고대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의 한 구절에는 “인간들은 높은산, 깊은 바다,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과 대양의 거품이는 파도와 별들의 아득한 운행을 보면서 감탄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할줄 모른다. 땅위의 풍광에 홀려서 심장이 멎는듯한 탄성을 내질렀던 내 모습이 창피했고, 그런 자신에 대한 노여움이 걷잡을 수 없이 일었다.

인간의 영혼보다 더 경탄스러운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영혼의 크기에 견줄만한 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왜 진작 떠 올리지 못했던가. 이제 내 내면의 풍경으로 눈을 돌릴 차례이다.”라고 했는데 인간의 육안의 즐거움보다는 영혼을 들여다보는 종교적 영안을 더욱 중시한 고백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만이 살아갈수 있는 세상이다. 모처럼 서울 나들이길에 서울 인사동 한 화랑에서 전시중인 “즐거운 아프리카 미술전”을 관람했다. 1층부터 5층까지 수백여점의 회화와 조각작품들이 전시중이었는데 영혼을 즐기는 미술품속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색은 참으로 색이 밝다. 흰색도 밝고 검정색도 밝게 보인다.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실세계로 끌어내린 신들의 중심에 인간이 있기 때문인데 아프리카에 성전이 없는 것은 다 그런 이유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신을 믿지만 신을 절대화 시키지 않는데 그들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신성을 인간의 심성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림속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즐겁고 밝은 표정의 유희를 담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세상에 대한 기도의 내용이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춤추기를 원하면서 함께 춤을 추다보면 절망에 빠지지 않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선율이 저절로 나는 듯한 율동적이고 역동적이며 흥겨운 표정의 영혼을 표현한 그림들이 많다. 부부를 표현한 조각상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통해 인연의 끈을 인륜으로 실천하는 조화로움을 표현했는데 부부조각을 집에 두거나 바라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정신적 안정감을 가지고 상대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인륜학습의 새로운 표상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태초의 빛을 말씀이라 하였고, 사랑이라 하였고, 평화라 하였는데 빛을 자기의 세계로 인식하면서 철학에서는 진리로, 음악에서는 소리로, 그리고 미술에서는 색채로 빛을 받아 들인 것이다.여러가지 문양들, 긴팔과 긴 다리를 가진 기하학적인 사람들 그리고 무리를 지어 어딘가를 향하는 동물들의 그림들이 눈에 뛴다. 조각의 몸통을 감싸고 있는 수백개의 구슬은 여전히 공동체의 결속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끈으로 맺어져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이런 유유자적한 아프리카 그림을 감상하면서 이 시대 우리의 젊은이들이 오늘날 너무나 편리한 인터넷 문명의 혜택속에서도 슬픔과 죄악속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현대미술에 대한 갈증을 아프리카 특유의 시각과 에너지로 풀어 내는 그림들을 보면서 미술을 애호하는 관객들에게 여러가지 큰 의미를 준 전시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