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보수 공로자 박세제
촉석루 보수 공로자 박세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1.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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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향토사학자

 
박세제(1917-1981)선생은 1949년 10월 부터 1981년 까지 약 32년간 진주문화원 초대원장(처음엔 미 공보관)으로 진주 문화계의 큰 별이요.최고 봉사자로 활약한 분이다.
지방 신문 정경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1958년 8월부터 부사장. 이어 사장이 됐다.
시기적으로 볼 때 진주 문화원 초대원장 겸 신문사 부사장 재직중 촉석루를 크게 보수한 공로자로 인정된다.
박세제(朴世濟)선생은 항일투사 박도제(朴道濟)선생의 3년 아우인데 필자가 지은 <진주항일운동사>426-427면에 소개한바 있는데 박도제 선생은 1914년 5월 17일생이며 진주제2보통(봉래)학교를 1929년 3월 졸업하고 진주고 재학중 항일시위를 주도하고 또 다시 진주경찰서장. 일본인 교장에게 항의서를 발송했다가 일경에 피체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혼절했다. 학교에서 퇴학처분되고 결국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박도제의 아우 박세제 선생은 보통학교 성적이 월등해 일본 유학을 떠났고 그 당시 수재들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일본대학 법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법학과 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 일본 법관 또는 총독부 소속 관원으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단호하게 거부하고 창씨개명은 조상을 파는 행위로 간주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1959년 촉석루를 크게 보수할 때 고적보존회 상무이사로 활약하며 촉석루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일에 크게 기여한 분이다.
이는 문교부 장관이 도지사를 거쳐 공문을 발송한 바에 의하면 원형대로 설계도 그대로 복원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전국의 최고 기술자. 기능자들을 수소문해 초빙할 때 총 책임자로 활동했다.
국무회의록에 의하면 <촉석루보수관계보고>라는 제목으로 제출되었다는 것은 촉석루의 기초석과 석문. 기둥 등이 온전히 보존되었고 중건. 재건이 아닌 큰 보수를 의미한다.
1960년 11월 촉석루 입구에 진주출신 공로자들을 기리는 목비가 세워졌는데 박세제 선생이 모두 파내어 자신이 경영하는 공원여관으로 옮겨 보관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초.중.고 학생들과 군인들. 기업체. 언론인. 기술자들. 시민들 수백명이 총동원. 총동참했는데 몇 사람을 위해 목비를 세우다니 무슨 짓이냐 라는 뜻이었다.
박세제 선생은 여러 가지 공적 때문에 1972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1981년 별세해 오는 2월 3일이 기일이다.
부인 김영희(92세)와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고 막내 딸 월산 박계현은 진주문화원 전통문화 연구실장이며 경남도 무형문화재 한량무 3호로 활약하면서 부친 박세제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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