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하나의 사회에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아닌 사회 전체의 ‘사회적 경험’이라는 것이 있고 그에 따른 심리적 잔영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종의 ‘사회적 무의식’이 되어 사회 전체의 사고 및 행동양태에 중요한 요인으로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학문적 가설로 내세우고자 한다. 만일 이 가설이 진리라면, 그것은 각 사회별로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양식이 다르다고 하는 현상 내지 사실에 대한 결정적인, 그리고 흥미로운 설명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재미 삼아 말하자면 ‘사회적 프로이트주의’라고 할까?
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다. 근간에 중국에서 체포된 한국인 마약사범들이 잇따라 사형에 처해졌다. 한국정부는 중국당국에 인권을 거론하며 수차례 항의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이를테면 ‘마약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용서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라는 것과 ‘중국은 만방을 거느리는 세계의 중심 국가’라는 사회적 무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역시 마약으로 인해 국가가 위기로 내몰렸던 청말의 역사적 사실과 수천년에 걸친 중국과 주변국들간의 조공관계라는 사회적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이런 현상들은 그야말로 무의식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목소리를 높인다고, 주먹을 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애당초 해결될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사회적 행동양태에 만약 어떤 ‘문제’라는 것이 감지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무의식과 그 근원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험을 학문적으로 면밀히 검토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한 세기, 우리는 그야말로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엄청난 사회적 경험들을 감당해왔다. 대한제국의 몰락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 일본의 패전과 해방, 남북의 분단과 625전쟁, 휴전과 냉전, 419, 516, 1026, 1212, 그리고 610, 629, 그런 한편으로 올림픽과 월드컵, 최근의 한류와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국이 겪어온 사회적 경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 심리적 잔영들이 우리 사회의 저 깊고깊은 밑바닥에 무의식으로 침잠하여 도도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프로이트의 심정으로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저 엄청난 사회적 문제들, 병적 현상들의 근원을 짚어봐야 한다. 올바른 진단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아픔을 딛고 한 걸음 앞으로 그리고 위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놓을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지금의 이 사분오열을 딛고, 좀 더 건강하고 고급스런 사회가 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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