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잔치
천사들의 잔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1.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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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조카딸의 재롱잔치에 갔다. 세 시간을 넘게 앉아 있었다. 극장에서 그렇게 오래 앉아 있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할 새가 없었다. 3세 반의 재롱이 끝나기 무섭게 7세 반의 재롱이 이어지고 여아들만의 재롱이 이어지고 남아들만의 재롱이 이어졌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귀여운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건 정말이지 몇 안 되는 행복이다.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게 아이들의 얼굴이다. 그런 행복한 순간 순간에도 몇 가지 놀라움과 의아함이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놀라운 건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그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어떤 아이는 예쁜 옷을 입고 무대에서 춤을 춘다는 그 사실이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시종 까르르 웃으며 뛰고 절고... 천사였다, 천사!! 게중에는 춤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같은 몸 동작인데도 보다 풍성하고 화려했다.

또 어떤 아이는 형형 색색의 화려한 조명이 신기해서 춤을 추는 건 뒷전이고 무대를 살피느라 두리번거려서 관중들을 웃게 했다. 영상 촬영 화면에 자기가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는 게 신기해서 화면을 멍때리며 보기도 했다. 화면을 더 가까이 보려고 서 있는 곳이 무대라는 사실과 자기가 지금 무대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화면 속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등장하는 아이들이 바뀌는데도 꼭 한 명 정도는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도무지 자기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감이 없는 아이들이 있었다. 오직 엄마나 아빠가 어디 있는지 찾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관중석에서 부모님을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하던 일을 갑자기 잘했다. 관중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더 열광하며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다.

압권은 아무래도 이제 '유딩시절'을 마감하게 되는 7세 반 아이들이었다. 압권 중 압권은 그 7세 반 여자 아이들이 펼치는 부채춤이었다. 전체적으로 꽃분홍 색 부채와 무용의상은 그냥 움직이기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천사 중에서도 천사였다. 천사라는 말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는 나의 어휘력이 안쓰럽다. 할 수 없다. 천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천사를 봤더라면 분명히 그 천사보다 더 예뻤을 것이다.

천사들이 만들어내는 연분홍 꽃구름이 이리 저리 불어다니는 무대는 마치 꿈속의 세상 같았다. 부채 끝에 달린 하얀 깃털들이 일시에 파르르 떨 때면 보는 사람 마음이 처음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순해졌다. 아이들은 행복해야만 한다. 그 아이가 버릇이 없더라도, 그 아이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도 절대로 눈도 흘기지 말아야지. 두 아이를 모질게 때리며 키운 일이 생각나서 괴롭고 후회가 몰려왔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세상만물에게 예쁜 마음으로만 봐야지.

부채춤을 추는 아이들의 손을 자세히 봤더니 하나같이 손등을 동그랗게 말고 꼭 잡고 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부채를 꼭 잡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하느라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던 것이다. 조카딸은 부채가 생각대로 안 잡히는지 자꾸 고쳐 잡았는데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안타깝던지.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어서 마음만 조마조마했다. 끝나자 관중들은 앵콜을 외쳤고 또 한번 관람했다. 두 번째엔 더 잘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대개 사회자는 외부에서 초대하든지 젊은 교사들이 보는데 그 어린이집에서는 드물게 원장이 직접 봐서 조금 의아했다. 그러나 첫 순서가 끝나기 무섭게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원장은 이참에 홍보를 하자는 속셈이었다. 무리하게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혹시라도 관중들이 의아해할까 조바심이 일었는지 영어로 뭔가를 하면 좋은 점을 일일이 말로 나열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이 원장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잔소리를 해댔다. 젊었을 때부터 이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인데 저 사람도 이제 늙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세 시간을 넘기면서는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음료수 마실 시간도 없이 진행됐던 것이다. 지하라서 공기 소통이 안 되는데다 무대의 움직임에 따라 먼지가 좀 날아다닐 것인가. 각자 준비해오라는 사전 통보도 없이 음료수도 비치도 쉽게 하지 않았다. 강당 밖에 출입구 구석에 비치를 했으니 귀찮아서라 참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 기어이 감기가 침입했다. 조카딸은 그러잖아도 찡찡거리던 코가 아예 막혀서 입으로만 숨을 쉰다. 세 시간 공연은 아이들에게 무리였다. 아이들이 어른인 줄 알았나? 언제나 어른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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