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보수 공로자 강용성
촉석루 보수 공로자 강용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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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향토사학자

강용성(1900~1982년)선생은 진주시 교육감(1954.2~1961.3)으로 6년간재직했다. 동아시아의 이스라엘로 호칭될 정도로 기독교가 사상적으로 지배했던 평양에서 북서쪽인 덕천군 풍덕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입교. 신앙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떤 계기로 진주로 내려 온 강용성(姜鎔成)선생은 1920년 경남임시교원강습소를 졸업하고 함안군. 진양군 일원에서 훈도. 교장을 역임하고 1943년부터 내동. 봉래초등학교 교장으로 10년간 봉직하고 진주시 장학사. 경남도 교육위원회 학무국장으로 4년간(1951~1954년)재직중 진주시민들이 진주 교육감은 강용성 선생이 적임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1954년 2월부터 진주 교육감이 되었다.
진주 교육감으로 재직중 촉석루를 크게 보수하는 큰일을 담당하게 된다.
강용성 선생이 진주시 교육위원회 위원. 진주시 체육진흥회 이사로 4년간 재직중 공설운동장을 건립한 공적이 있고 재건국민운동 진주시 위원장을 7년간 역임하고 또 다양한 부문에서 공을 세웠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촉석루를 크게 보수할 때 개인중 누가 공적이 가장 많냐고 물어보면 오직 강용성 교육감이라고 대답한다.
강용성 선생을 가르켜 촉석루 공사를 맡은 주체였으며 지휘 사령관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1959년 10월 10일 상량식 당시 2만 여명의 군중이 운집했다는 신문기사와 당시 행사 사진을 보면 맨 앞줄에 김백용 진주시장. 이정희 서무계장. 강용성 교육감. 박세제 고적보존회 상무가 앞자리에 나란히 서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촉석루 공사의 주역으로 봉사하신 일과 창선중.고등학교 교장. 진주 동명고등학교 교장 4년간 재직한 공적 등으로 교육공로 표창장과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강용성 선생은 주로 진주시 봉래동 113-2에 거주했고 봉래동에 소재한 진주교회 집사(1950~1954년)장로(1955~1980년)직을 수행했다.
교장 재직중 복음유치원 원장(1962~1980년)을 겸직한 정력적인 봉사자였기 때문에 촉석루 공사와 같은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교육장 재직중 촉석루 공사를 위해 초.중.고등학생들로부터 작은 금액을 모으고 모아 30만환을 수합했다.
문교부에서 경남도지사를 거쳐 강용성 교육감에게 하달한 공문에 의하면 설계도대로 원형대로 복원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복원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강용성 교육감은 윤정자와 혼인해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고 강남규 장남도 진주교회 장로(長老)였고 손자 2명 강재욱(서울) 강태욱(김해 상동의원 원장)등도 대한예수교장로교 장로직분을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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