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과거와 현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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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사람들은 현재라는 이 순간을 살면서도 과거에 붙들려 있을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과거의 일이 발목을 꽉 잡고 있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억울해서 상처가 되고 뒤미처 행하지 못해서 후회가 되는 일들이 자꾸 떠올라 잊혀 지지 않을 때가 있다.


정권만 잡으면 전임자들이 해 놓은 것들을 다시 되씹으면서 흠을 내고 감옥에 보내고 전임자의 업적을 부정하고들 한다. 국민을 혼동에 빠뜨리곤 한다. 그렇게 한 정권은 또 자기가 권좌에서 물러나면 또 후자가 그 자의 업적을 부정하고 흠집을 내게 되는 것은 인과의 법칙이다.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의 일은 돌이킬 수가 없다. 똑같은 강물에 똑같은 손을 두 번 씻을 수는 없는데도 자꾸 손을 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제를 부정하면 오늘도 부정되고 내일도 부정된다. 과거를 미워하면 현재도 미워진다. 과거 속에 가두어 놓고 바라보는 미운 사람은 오늘 현재 보아도 미워진다. 그래서 서로 과거의 감옥에 갇혀 사랑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실은 과거 그 자체가 현재를 지배하는 건 아니다. 과거의 감옥에 스스로 갇힌 자에 의해서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과거의 무엇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행복했던 일보다 불행했던 일을 더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의 불행에다 오늘의 불행에 원인을 둔다. 오늘이 바로 과거의 결과라는 사실만으로 그 결과가 좋을 때는 그렇지 않으나 못마땅할 때는 자꾸 과거를 원망하게 된다. 과거의 직접적인 악영향 때문에 오늘의 내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과거만 원망하는 게 아니라 오늘 현재도 원망한다는 데에 있다. 그렇게 되면 항상 과거의 결과에 의한 삶만 있게 되고, 오늘 현재의 삶은 없게 된다. 과거라는 삶의 연장선상에서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오늘도 후회하고,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 오늘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당한 일의 증오감에 아직도 시달린다면, 그것이 바로 현재에 살지만 과거에 사는 것이다.

그것은 소중한 시간의 낭비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 버린다. 과거는 오늘이 아니다. 오늘이 바로 오늘이다. 내일도 오늘이 아니다. 어제는 부도난 수표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이며, 오늘은 현금이다. 즉 오늘 현재에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행복은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만나고 사랑하는 이들한테 있지, 어제 내가 지니고 있던 것, 어제 내가 하던 일, 어제 내가 사랑하던 이들한테 있는 게 아니다.

어제와 똑같은 해가 오늘도 뜨고, 어제와 똑같은 바람이 오늘도 불어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모든 것은 어제와 다르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뜨고, 오늘의 바람은 어제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소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과거가 절망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하더라도 과거는 과거대로 소중하다. 오늘 나는 분명 과거가 성숙시킨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을 오늘의 디딤돌로 삼고 과거의 실패를 오늘의 보석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 할지라도 긍정하고 받아들이면 오늘의 자양분이 된다. 초발심(初發心)을 잊지 말라는 말도 오늘 여기에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남 승주읍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해우소(解憂所:화장실)에 가면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 절에 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새들의 지저귐이 나를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절에 왔으니 해우소에 가서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고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고 부처님께 절이나 한 번하고 가거라! 라고 지저귀는 것 같아 공연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전직대통령의 회고록 일부 내용 때문에 세상이 또 시끄럽다.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고 오늘을 사는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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