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자 최민영
나의 제자 최민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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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요 며칠 푸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푹한 날씨에 살면서 이대로 봄이 오나 보다 했다. 이웃과 인사하며 이제 추위도 다 갔어 라고 하면 이웃은 그럼 이제 큰 추위는 없을거야 라며 맞장구를 쳤다. 입방정에 부정이라도 탄 것일까. 추워도 너무 춥다. 따뜻한 이야기가 하고 싶다. 눈시울이 따끈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순간, 나의 제자 민영이가 뇌리 속에 찾아와 씨익 웃는다.  

휴일 아침 두 아이들이 곤히 자는 걸 즐기며 혹여 깰새라 살금살금 움직여 냉장고를 열어봤다. 카레라이스 재료들을 확인하곤 아이들이 잠을 깨면 요리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안방으로 가서 아침 근행을 하려는데 민영이 소리가 작은방에서 들리는 게 아닌가. 아들과 한 반이어서 중학교 동안 내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를 한 아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작은 방으로 갔더니 정말로 민영이가 와있는 게 아닌가? 오랜 만인 것에 비해 별로 변한 것도 없이 씨익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민영이만 보면 생각나는 있다. 지나간 어느날, 우리가 실실 걷다가 마음을 다잡고 뛰기 시작하면 무엇이 방해를 하는냐고 내가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민영이가 대답했다. “바람이요, 바람이 앞을 막죠나는 그날의 총명한 민영이의 눈빛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순한 성격에 말은 약간 어눌하고 조금 더듬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순간은 더듬지도 어눌하지도 않게 대뜸 정답을 말했던 것이다. 그날 나는 신이 나서 인생도 뭔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분명히 방해작용이 있다는 걸 역설했다. 민영이는 진지하게 들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인사를 나누는 중에 두 제자가 또 합류를 했다. 기쁘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카레 요리를 서둘렀다. 밤새 자고 벌써 열 시가 다 되어 가는데 얼마나 배가 고플것인가. 카레라는 요리는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 음식이다. 맛이 너무 독특하고 강해서 그럴 것이다. 그릇마다 그득그득 퍼서 주었더니 제자님들은 카레가 오랜만이라느니 맛있다느니 선생님 요리 모처럼 먹는다느니 해서 왁자지껄 식사를 마쳤다. 후식으로 감귤을 까먹으며 그제야 각각의 안부를 꼼꼼하게 물었다. 가족들도 모두 안녕하다는 말을 들으며 감사한 맘이 절로 들었다.  

예의 웃는 듯 마는 듯한 애매하고 순한 표정의 민영이가 말을 꺼냈다. “제가요, 이제부터라도 고, 공부를 해볼려고요오. , 열한 시나 열두 시면 도서관에서 도, 돌아오는데요, , 그게요 소름이 돋았어요” “왜에?” “, 선생님 말씀이 생, 생각나서요. 우리 보고 게임하지 말라고 그,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제일 후회가 돼요. 중학교때 게임을 너, 넘 많이 한 게요순간 다른 제자들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문득 민영이의 첫글을 생각했다. ‘나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학교에서 과제를 주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뭐든 써라고 내준 제목이었다. 공부방셈인 내가 지도를 했던 것이다. 다음날 자신을 글을 가지고 와서 쭈빗거리며 창피해하며 작은 글씨로 에이포 2면을 가득 채운 걸 내게 내밀었다. ', , 이렇게 길게 쓰는 거 처, , 첨인데요..... .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며 같은 학교에 배정된 한 친구와 중학생활을 함께 할 것을 결의했는데 하필 그 친구가 이사를 가서 절망한 이야기로 작은 글씨가 눈물겨웠다. 민영아, 미안하다.

침묵을 깨며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민영이는 진짜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진정 감사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민영이를 가르치던 그즈음이 재벌기업 탐욕을 가장 저주하던 때다. 수업시간이니 핸드폰을 나에게 맡기라고 해도 눈도 깜작이지 않고 게임을 계속했다. 두서너 번 좋은 말로 해도 안 들으면 나는 짜증과 분노가 폭발해서 길길이 뛰었다. 개의 새끼 소의 새끼 닭의 새끼 등, 가축의 새끼라는 새끼는 다 불러모아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길길이 재벌들을 저주해도 재벌은 보란듯이 한 달이 멀다하고 그 저주스런 '신제품'을 만들댄다, 지금도!  

언제나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걸 보면 가슴에 분노가 부글거린다. , , , 대학생들까지 그놈의 스마트 폰만 만지작대니...... . 내가 기억하기로 저 욕심많은 장삿꾼이 대통령씩이나 되어가지고 어느 재벌의 공장을 방문해서 '우리도 닌탠도 같은 걸 만들어봐' 라고 했고, 얼마 후 그 재벌의 공장에서 스마트폰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 학생들 98% 가량이 그 악랄한 기계에 중독되어 죽어가기 시작했고. 애초 스마트폰은 전화기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전화기의 탈을 쓴 게임기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정말 화가 난다.  

고마운 마음을 감추고 민영이를 가만히 봐라보았다. 고맙다, 진짜 고맙다. 기어이 스마트폰을 이겼구나. 재벌을 이겼단 말이다!! 그래, 인생은 그렇게 더러운 것들과의 싸움이란다. 위대한 나의 제자, 민영아, 나는 너를 믿고 빡세게 응원한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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