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과 세배
설 명절과 세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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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하동 화개초 교장, 시조시인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 우리에겐 두 번이 되어 버렸다. 양력으로 1월 1일과 음력으로 1월 1일이다. 양력 설과 음력 설이라는 말로 하기도 한다. 우리의 전래 설은 음력설이 맞다. 하지만 한 때는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하고 양력 설을 쇠게 하던 때가 있었다. 그 것은 서양의 책력에 맞추어 한 해를 시작하는 양력 1월 1일로 설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양력 설과 음력 설로 나뉘어 쇠는 웃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나라에서 그렇게 유도하고 하게끔 해도 우리의 전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음력설을 쇠니 결국은 음력설을 쇠게 할 수 밖에…

하지만 어떻게 보면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경제적으로 막대한 수요를 지닌 나라이다 보니 중국이라는 나라가 음력설을 쇠니 어쩔 수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는 설을 쇠면 온 가족이 모여서 세배부터 하고 차례를 지냈었다. 우리는 작은 집이라 큰집에 모여서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떡국을 먹었다. 그 때만 하여도 가족이 많으면 정말 좋았다. 세뱃돈이 많아지니 말이다. 그래서 차례를 마치고 나면 이웃집에 세배를 가는 것이 하나의 일이었다. 당연히 어린 마음에 세뱃돈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다. 세뱃돈이 금액으로 치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것이 모이는 재미는 솔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이 모이면 세뱃돈에 대한 자랑이 많았었던 것도 하나의 자랑거리 였으니 말이다. 세배는 설을 쇠고 나서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기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먼 친척집에도 그 정월 대보름까지 세배와 함께 웃어른께 인사를 다녔다.

요즈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세배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세뱃돈도 어떤 잣대도 없이 많은 돈으로 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세배를 하고 받는 돈에 대한 의미도 잃어가고 잊지는 않는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명절인 설을 보내면서 설에 대한 그리고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세배라는 웃어른에 대한 예의범절로 공경과 배려로 나타나는 것이 퇴색되어가는 것에 대하여도 참으로 아쉽다. 설을 쇠지 않고 여행을 가는 가족도 많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가족끼리 모여서 한해를 건강하고 희망하는 것이 잘 되라는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설을 쇠고 세배를 하고 나아가서 동네 웃어른도 만나 뵙고 멀리 있는 친척도 찾아뵙는 우리들의 미풍양속이야말로 얼마나 좋은 풍습이고 예의범절인가? 인성교육은 이런데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꼭 억지로 교육이라는 틀에 맞추어 인성교육을 하여야 하는 것인지? 이번 설은 토요일에다가 일요일까지 더해서 제법 쉴 날이 많았다. 하지만 정례화 되다시피한 설을 쇠는 코스는 조상을 모시는 차례를 지내고 나면 처가에 빠른 시간 내에 다녀가야 한다. 모두가 직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

우리는 촌에 있는 아버님 댁에서 자고 아침 일찍 떡국을 끓여 먹고 큰집의 형님이 살고 있는 김해에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간다. 작은 아들은 이번에 의경으로 군대에 입대했기 때문에 없고 나와 큰아들 그리고 아내,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갔다. 가는 고속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오고 가는 것이 이제 집으로 가는 것이나 산소에 가던가 아니면 차례를 지내고 자기 집이나 처가로 가는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참으로 많은 차들의 이동이다. 차례를 지내고 올 때에는 차들이 정체가 되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집에 오니 사촌들과 함께 그들의 가족들이 우리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대구에 있는 여동생네 가족이 일찍 왔다. 우리는 산소에 조상님을 뵙고 와서 마당에 고기를 굽는 숯불을 준비하였다. 도시에서는(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어려워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에는 가끔 모두들 둘러앉아서 구워 먹는다. 올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처럼 날씨가 따뜻하여 밖에서 함께 하기는 좋은 날씨였다. 그리고 우리는 방을 양보하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장모님 댁에서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모여서 설의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들은 차량의 정체를 염두에 두고 직장으로 일찍 떠났다.
옛날과 같은 설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아쉬움도 이제는 나에게도 당연지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빡빡하고 바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리라. 그만큼 여유가 없고 사라진 탓이리라.
우리들의 최대의 명절인 설을 쇠면서 어렸을 때의 세배와 세뱃돈, 웃어른들의 덕담 그리고 떡국에 들어 있는 조상들의 얼을 생각해본다. 이제 조금은 여유를 찾을 때도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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