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역할
교수의 역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2.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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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상/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식품과학부 교수

매년 2월은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고등 그리고 대학교의 졸업식이 각 학교에서 개최된다. 현행 법령이 정하는 일정한 수학연한 동안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다음의 진행을 위한 인증서를 수여하는 것이다.

우리대학도 설날을 보내고 졸업식을 하게 된다. 교정에는 멀구슬나무가 있고, 교목으로 정하였다. 멀구슬나무는 잎이 지고 겨울동안 열매를 계속 달고 있는데, 봄에 싹이 나면 이들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선배와 후배의 이어받기가 분명해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오늘 우연히 대학 졸업식에서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1968학년도에 세워진 교육탑에 ‘무명의 교사’라는 시를 보고서 가슴 뭉클한 글귀가 있어 전문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시가 쓰여진 시대적 배경으로 6.25 전쟁이 끝난지 15년이고, 국민소득 1000불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궁핍한 생활수준이었다.

나 또한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몇 번이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기억이 난다. 등하교 길에는 돼지의 품종개량을 위해 만든 종축장(종돈장)이 있었는데 목초지를 트랙터로 관리하는 수준으로서 무척 넓었다는 기억이다. 책 보따리를 등에 메고 종축장 주변 풀밭에 말리고 있는 절간 고구마를 주워서 관리인 아저씨 만날까봐 도망치던 생각이 난다.

과학자가 꿈이었던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지도 벌써 20년을 넘어가는데 정작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대하였는지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글은 현재 또는 미래의 교사들이 한 번 쯤은 새겨야 할 것 같다. 이글을 옮기는 것에 대한 허락은 받지 못하였지만 진주교육대학 제4회 졸업생 분들은 너그러이 이해하여 주실 것이다.


‘무명의 교사’
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위대한 장군은 전투에 승리를 거두나, 전쟁에 이기는 것은 무명의 병사이다.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 그는 청빈속에 살고 고난속에 안주하도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마차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 않는도다. 묵묵히 어둠의 전선을 지키는 그 투지와 우매의 참호를 향하여 돌진하는 어머니, 날마다 날마다 쉴 줄도 모르고 청년의 적인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자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으키도다. 게으른 자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하고자 하는 자를 고무하며, 최고의 정신적 보물을 젊은이들과 더불어 나누도다. 그가 켜는 수 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지식은 서책에서 배울 수 있으되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따뜻한 인간의 접촉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로다. 공화국을 두루 살피되, 무명의 교사보다 예찬을 받아 마땅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민주사회의 귀족적 반열에 오를 자, 그밖에 누구일 것인고.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머슴인 자!”
서기 1968년 2월 22일
증 진주교육대학 제4회 졸업생 일동

요즈음은 지식의 전달이 ‘폰’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사랑하는 마음으로 얻을 수 있다면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전쟁을 겪은 이후의 생활이라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고 사는데 급급할 시기에서 교사들은 오늘의 대한민국 부흥을 이루는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 한걸음 한걸음의 노력이 만든 결과인 것이다. 그들이 만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속의 한국, 글로벌 시대의 중심에 있는 ‘한류’이다.
이제는 그 한류를 좀 더 지속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많은 세상의 일들은 변화하여야 하는데, 그 변화가 두렵지 않도록 교사들의 중재역할 이 필요하다.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머슴인 자!” 그는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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