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사 김의진(金義鎭)
항일투사 김의진(金義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0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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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향토사학자

항일투사 김의진(1894~1941)선생은 진주시 상봉동 934-4번지 출신으로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 소속 경남청년회장으로 이돈화. 박태준. 박태홍 선생 등과 경남일원에서 애국강연회를 개최해 대성황을 이룬 분이다. 이 때 일경에 검거되어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1920년 3월 26일 황태익(건국훈장 추서)선생과 함께 경남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산중에서 결사대를 조직해 일본 총독 등을 암살하기 위해 활동하려다 일경에 발각되어 대원 8명이 전원 체포됐다.

8개월간 미결로 진주감옥에 구금돼 조사를 받았으나 친목단체임을 강조했고 일제가 마침 문화통치를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석방됐다.

김의진(金義鎭)선생은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교육통계조사를 실시할 때 조선교육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 3월부터 동아일보 진주지국장이 되고 진주청년회 위원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진주제1노동야학교를 위해 봉사했고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에 동참했다는 기록도 있다.

1923년 1월 진주청년회관에서 신년강연회를 개최할 때 청중 1천여 명을 모아 금연운동을 펼쳐 전국에서 가장 먼저 금주금연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필자가 발굴해 발표했다.
또 1월 29일 김의진 선생 부인의 친구인 김한경 등 26인을 발기인으로 하여 진주여성단연(금연)의 창립총회가 개최되게 하고 발기인들은 당일부터 매일 10전~50전씩 저축해 금연운동 사업에 사용케 지도하고 같은 해 2월 9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전국최초의 여성금연단체가 진주에서 조직되었다고 보도됐다.
필자가 일제강점기의 금연운동이 항일운동의 하나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2002년 3월 2일자에 발표했다.

1924년 11월 항일투사 김재홍. 강달영. 박태준. 박태홍 선생과 함께 일경에 검거되었고 검찰청에 송치되기도 했다.
전국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가 서울에서 시작해 경남 각 시.군에도 지회가 창립되자 경남최초의 신간회 사천지회 창립의 배후 세력으로 활동했다.
1929년 광주학생사건이 발생하자 같은 해 12월 4일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서울에서 일경에 체포되었고 또 다시 옥고를 치른 분이다.

석방되었으나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 1941년 8월 5일 47세 때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순국하신 김의진 선생의 서훈을 청원한다.
김의진 선생에 관한 상세한 공적과 참고문헌은 필자가 쓴 <진주항일운동사> 409~411면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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