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A 사마란치와 자크 로게 전·현 IOC 위원장
후안 A 사마란치와 자크 로게 전·현 IOC 위원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0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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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떠났어도 한국민들에게 고마운 존재

▲ 김운용(80)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은 뉴시스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 '산고곡심'에서 지난해 타계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종신 명예위원장과 자크 로게 현 IOC 위원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사진은 김 전 부위원장이 지난 1999년 사마란치 서울 방문 때 피아노연주를 선보이는 모습이다.
지난 21일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종신 명예위원장이 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름을 떨친 사람마다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는 우리 한국민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향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을 도왔고, 2002년 FIFA한일월드컵 유치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채택 결정에도 큰 도움을 줬다.

정상적이면 서울에서 올림픽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1주기 추도 모임을 갖고 싶었지만,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걸려 있어 현재는 IOC 관계자를 초청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추도 모임은 훗날을 기약하고, 아쉽지만 이 글로 대체하려고 한다.

"우리가 자주 가던 바로셀로나의 비아 베네토(Via Beneto) 레스토랑에서 5월17일 14시에 만납시다."

필자와는 30년 지기 친구인 사마란치 IOC 종신 명예위원장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세계 스포츠계의 위대한 별이 운명을 달리하기 얼마 전이었다. 지난해 4월21일은 개인적으로 '반평생의 동지이자 형제'를 잃은 안타까운 날이기만 했다.

사마란치는 올림픽 운동을 중흥시키고, 재정파탄으로 빈사 직전에 있던 IOC를 살려내며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필자가 유색인종 최초로 IOC 위원장에 도전했던 2001년 모스크바 총회 때, 사마란치는 백인우월주의에 빠졌는지 객관성을 상실한 채 자신의 후계자로 자크 로게 현 IOC 위원장을 내정했다. 여기에 있을 수 없는 선거규정을 즉흥적으로 만들고, 심지어 투표 직전에 인신공격까지 했다. 이에 앞서 IOC 권좌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로 이어져 자신과 IOC의 명예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IOC는 사마란치 전과후로 나눠진다고 평가될 만큼 사마란치는 큰 업적을 남긴 사람임에 분명하다. 자크 로게 현 위원장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아무리 차별화하려고 해도 사마란치와는 비교가 되기 힘들어 보인다.

IOC의 최상부에서 사마란치와 로게의 시대를 모두 겪은 까닭에 사마란치와 로게, 전·현직 두 IOC 위원장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기 싫어 대부분 정중히 거절했지만 스포츠외교를 연구하는 후학 및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 들어 생각을 정리해 봤다.

사마란치 타계 직후 두 사람의 차이를 영국의 한 대기자가 압축해서 명료하게 논평하는 것을 들은 바 있다. 그는 "사마란치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한다면 로게 시대는 '역사가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먼저 사마란치는 경륜이 많은 정치가, 경제인, 외교관, 스포츠행정가, 스포츠맨이다. 스페인의 자치령 카탈루냐의 주지사, 정당 당수, 스페인올림픽위원장, 체육장관, 주 모스크바 대사, 까샤(CAIXA) 은행 회장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다방면에서 경험을 쌓았고, 그 축적된 힘은 상당했다. 또 상당한 재력가이자 문화인이다.

이에 비해 로게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진다. 벨기에의 정형외과 의사이며 올림픽 요트경기에 3회 출전한 선수 출신이다. 자국의 올림픽위원장을 한 번 지내고 두 번째는 반 덴 에디에게 패해 낙선했다. 이로 인해 유럽 올림픽위원장의 자격이 상실되자 사마란치가 규정을 바꿔가며 헝가리 장관을 낙마시키고 자리를 유지시켜준 바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마란치가 좀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면 로게는 다소 냉혈적인 것 같다. 로게는 사마란치가 가진 품성 즉 승리에 대한 겸손, 패자에 대한 동정, 진정한 위대함 등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앞서 말한 영국의 대기자는 로게에 대해 "직업(의사)에서 오는 꼼꼼함으로 경직돼 있다. 주변이 요새화된 느낌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관념의 소유자가 되도록 한다"고 했다. 이 말이 로게의 그릇과 품성을 어느 정도 잘 표현하는 듯 싶다.

그럼에도 사마란치는 퇴임 3년 전부터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다. 이에 대해 사마란치는 늘 부인해 오다가 지난해 봄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자기가 (로게를)지지했다며 처음으로 진실을 밝혔다. 죽음이 목전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사마란치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증언을 남겼다.

그러나 로게는 사마란치의 도움 없이도 IOC 위원장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다녔다. 언론과 파리의 기자들도 "모스크바에서의 선거 규정은 그(로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유럽연맹 비용으로 출장을 다니고 유럽연맹의 후원으로 선거준비를 했다"고 꼬집은 바 있다. 밝히지는 않지만 액수까지 돌아다닌다.

사마란치 입장에서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격'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로게에게 도움되는 말을 하든지 아예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일례로 사마란치는 로드 킬라닌 전 위원장에게 1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걸고 상의를 했다. 반면 로게는 1년에 한 번도 사마란치에게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사마란치는 올림픽에서 보이콧을 없앴다. 또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을 없앴다. 지금은 올림픽 때마다 TV나 스폰서에서 들어오는 돈이 30억 달러가 넘는다. 또 많은 도시가 올림픽 유치를 신청하고, 많은 기업이 6500만 달러씩 내고 너도나도 스폰서가 되려고 한다. 재정적인 안정은 운동선수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1994년 로잔에 모금으로 모은 1억 달러를 들여 올림픽박물관도 개관했다. 당시 한국도 필자가 앞장서 650만 달러를 기부했다.

사마란치는 비밀사교클럽 같은 IOC를 공개하고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각국 국가수반과도 대등하게 정치와 외교교섭을 해냈다. 또 올림픽에서 한 명도 없던 여성 IOC위원을 11명으로 늘리고, 모든 종목에 여성종목을 있게 하고 올림픽 참가 여자선수 비율도 거의 50% 수준으로 만들었다.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던 모스크바올림픽이 80개국, 동서진영이 모두 참여해 위대한 올림픽으로 평가받는 서울올림픽은 160개국이었고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참가국이 205개국이었다. 올림픽 TV 시청자는 40억명이다. 베이징올림픽 개회식만 시청자가 10억명이라고 한다. 올림픽은 회를 거듭할수록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모해 갔다. 반면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압력에 의해 만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약물복용이 문제가 되었고, 올림픽의 비대화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결국 솔트레이크 유치관련 부패는 부자 나라가 아니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만들었다. 사마란치는 끊임없이 IOC 위원의 연령 제한을 바꾸고, IOC 헌장을 변경해 21년간 IOC의 수장 노릇을 했다. 권좌에 대한 욕심이 솔트레이크 스캔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사마란치는 처음 약속대로 1997년에는 은퇴를 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곤 했다. 올림픽을 동계·하계로 분리해 2년마다 개최하게 한 것은 올림픽의 희소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야구, 축구처럼 프로스포츠가 올림픽과 대등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다른 군소종목들도 재정적으로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해 졌다. 다시 말해 올림픽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NFL, MLB, NBA가 좋은 예다.

IOC의 황금시대를 이끈 사마란치는 왜 자신의 후계자로 로게를 선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영국의 그 대기자는 "사마란치가 모든 것을 이뤄 놓은 상태에서 아마 IOC의 평온시대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로게는 자신을 사마란치와 차별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예를 들어 로게가 처음으로 관장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피겨스케이팅 판정 시비와 노르딕 종목에서 9차례나 메달을 따낸 라리사 라주티나의 실격 문제로 논란이 일주일간 지속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푸틴은 IOC가 지나친 상업주의와 편파적인 판정으로 솔트레이크 올림픽은 실패작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여당은 선수단 철수를 준비했고, 러시아 NOC도 2004아테네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로게는 페어 금메달을 두 개로 쪼개고, 실격된 선수에게 실격 이전에 획득한 은메달 2개를 수여하는 등, 수습하기에 바빴다.

자신도 IOC에 무언가 유산을 남겨놓기를 희망하는 로게는 얼마전 청소년올림픽을 싱가포르에서 개최했다. 로게는 청소년 경기를 유럽 NOC 회장 시절 유럽에서 매년 시행했는데 스포츠 행사라기보다는 놀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2010년 제1회 청소년올림픽도 IOC가 3000만 달러를 지원해 성사시켰는데, 스포츠보다는 청소년의 문화, 교육, 친목행사 참가 등에 더 중점을 두었다.

사실 청소년올림픽은 1998년 사마란치의 제안으로 필자가 준비위원장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아쉽게도 솔트레이크 사건이 터져 중단되었던 것이다. 올림픽이 20세기 말에 극적인 대중화에는 성공했지만 청소년 교육과 세계평화라는 근본 취지가 많이 훼손되지 않았나 염려가 많다. 그래서 로게는 청소년올림픽을 자신의 치적으로 남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로게는 사마란치와의 차별화를 위해 극단적 언행까지 보이며 노력했지만, 세론은 사마란치가 만들어 놓은 재정왕국을 유지하면서 특전을 누렸을 뿐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두 사람은 '보스' 기질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마란치는 IOC 위원들의 활동이 문화적 차이로, 혹은 각국의 법이나 제도에 저촉돼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반면 로게는 그러한 경우 외면한다. 또한 윤리위원회를 자기 구미에 맞게 적용한다.

어쨌든 로게는 사마란치의 소망대로 평온을 유지하고는 있다. 그리고 다음 위원장 선거 때는 IOC 헌장대로 물러나기로 했다. 그는 극소수의 측근을 거느렸지만 아무하고도 상의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IOC 내도 사마란치 때와 같은 가족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진정한 차이점과 업적은 후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사마란치와 로게의 행보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큰 차이점을 보인다. 즉 한국과 어떤 관계이며, 한국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를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친한파였던 사마란치는 평화시 일류의 최대 종합제전인 서울올림픽을 보이콧 없이 성공시키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고 30회 이상이나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한때 한국의 대변자처럼 한국을 보호했고 서울올림픽 성공 외에도 부산아시아게임 유치 때 대만의 정치적 물량공세에 부산이 고전하자 직접 방한해서 도와주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태권도의 올림픽종목 채택은 사마란치가 없었다면 아무리 필자가 열심히 했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1995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요청으로 FIFA의 주앙 아벨란제 회장을 반협박조로 두 번이나 몰아붙여 2002년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회장을 IOC위원으로 만든 것이나, 2000시드니올림픽의 남북공동입장도 모두 사마란치의 작품이다.


 
그런 사마란치가 2003년 프라하 IOC총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 한 조언을 한국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도 삼수(三修) 성공을 위해 엄청난 돈을 쓰고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물론 선거는 뚜껑을 열어 봐야 그 결과를 아는 것이지만 2003년 당시 로게는 평창이 20표가 나올 것이라고 미국 NBC방송의 딕 에버솔 회장에게 말했다. 이때 에버솔 회장은 동계올림픽이 아시아에 가면 NBC방송의 광고손실이 5억 달러는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물론 필자의 조직에서 나오는 표 덕에 평창이 선전했지만, 결과는 사마란치의 조언대로였다.

그때 사마란치의 조언은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번에는 밴쿠버나 잘츠부르크를 꺾기 힘들 것이다. 2등만 해라 2등도 좋은 2등을 해라. 개최지 표결 후에 있을 부위원장 선거에서 네(김운용)가 당선되면 그 힘으로 4년 후 과테말라총회에서는 틀림없이 이길 것이다"였다.

반면 로게와 한국의 관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벨기에 선수단장으로 온 것, 1999년 서울 IOC총회 때 온 것, 대구 U-대회, 부산아시안게임 폐회식, ANOC 총회 참석이 전부다. 물론 2004년 11월에는 부부가 비밀리에 그 말 많은 삼성미술관 리움을 방문하기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

그 때는 KOC(대한올림픽위원회)에 보도관제(報道管制)를 요청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은밀한' 방문이었다. 무슨 목적이 있었을까?

당시 일정의 마지막은 KOC 위원장의 건의로 청와대가 초청을 하는 것이었다. 청와대가 로게에 대한 접대 및 선물증정이 끝난 후 김정길 KOC 위원장을 IOC위원으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하니 로게는 그 자리에서 "노 아이 캔낫(No, I cannot)”이라고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사마란치에게 IOC위원 추가선임(이건희 삼성회장을 염두)을 요청했을 때 "가서 연구해서 김운용 IOC부위원장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인 부분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사마란치는 서울올림픽 직후 서울대학교에서, 로게는 2005년 ANOC 총회 직후 경희대학교에서 각각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로게는 가는 나라마다 명예박사학위를 수집하고 다닌다고 한다. 한국에서 하나쯤 주었다고 그다지 고마워 할 것 같지는 않다.

사마란치가 세상을 떠나기 1년전 광주유니버시아드 유치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바로셀로나로 그를 찾아 갔을 때였다. 프라하 IOC총회에서 내가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을 돕지 않았다는 터무니 없는 비난과 공격을 받은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왜 너를 공격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너는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고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 넣은 사람이고 한국체육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공격할 수 있는지, 너 없이는 태권도는 올림픽에 못들어 갔을텐데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참 생각하더니 이어서 "질투인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로게를 만나고 돌아온 사람들은 마치 그가 평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처럼 떠들고 다닌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IOC는 모든 유치 신청자, 유치 희망자에게 '잘 해 보시오'라고 권장하는 것이 통례이다. 로게도 그런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IOC위원과 언론이 부정적인데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할 만하다' '해보라' 등 운을 떼는 것도 좋은 예다.

스포츠 외교는 실리와 확증으로 하는 것이지 공상과 이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와 운동경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다. 득표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사대주의 사상과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면 냉엄한 사고를 가진 의사 출신 로게에게 이용만 당할 수 있다. 그는 소위 서양식 이중인격자인지도 모른다. 로게는 '서울올림픽을 가장 위대한 올림픽'으로 또한 '보이콧 없는 올림픽'으로 한국과 함께 성공시킨 사마란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IOC 지인들에 의하면 로게는 이미 레임덕(Lame duck)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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