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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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국민성 세계 감동시키기에 충분

▲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시민들이 태극기와 함께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필자가 대한체육회(KOC) 회장을 맡았던 시절, 과감하게 태릉 실내빙상경기장을 250억 원을 들여 건설했다. 언젠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이 오늘날 한국이 빙상 강국이 된 밑바닥에는 태릉빙상장이 있었다고 말해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피겨 여왕' 김연아를 비롯,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줄지어 획득했을 때 한층 더 기뻐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 태릉빙상장을 건설할 때의 일이다. 마침 일본은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때문에 한국과 같은 국제 규격의 400m 트랙 실내빙상경기장을 짓고 있었다. 자랑도 할 겸 슬쩍 물어 보니 일본은 무려 250억 엔(약 3000억원)이 든다고 했다. 우리는 10분의1도 안 되니 자랑은 커녕 그 이유를 물어보기에 바빴다. 일본의 담당자는 지진을 대비하기 위해 지하 40m까지 철골이 들어갈 정도로 견고하게 짓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두에 과거지사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3월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제법 긴 인생을 산 필자가 봐도 여러 가지 느껴지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34개국이 원조하겠다고 나선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도 보기 좋았고, 특히 대재앙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국민성(질서· 인내· 협동· 양보· 상부)은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언론이 모두 "일본이니 그 정도이지 다른 나라였으면 어떻겠느냐"고 자문했다.

일본은 경제대국으로서 기술적, 산업적으로 최고의 나라다. 어느 나라보다 지진 대비가 잘 돼 있다. 따지고 보면 쓰나미 탓에 피해가 한층 컸던 것이지 진도 9.0의 지진은 잘 견뎌낸 셈이다. 자연의 힘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유수 언론의 평가였다.

일본은 1896년 산리쿠 지진과 쓰나미로 2만2000명이 사망, 실종되었고 1923년 관동 대지진에서 10만 5000명이 희생됐다. 또 근래에는 1995년 고베 대지진에서 6000명이 사망하는 등, 대지진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대적인 기술적 준비와 훈련을 했고, 진도 6 규모의 지진도 버텨낼 수 있는 건축 기준을 세워 신축건물을 짓고, 구건물을 보강했다. 지진경보 등 피난훈련도 꾸준히 실시해 세계 제일의 내진 대국이 됐다.

상하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층 건물이 많은 도쿄는 이번 대지진에서 보았듯이 진도 6 정도에는 끄떡 없었다. 지하철, 전철, 공항, 고속도로 모두 지진을 버텨냈다. 고층건물의 경우 내부에 추가 철골, 슬라이딩 벽, 고무패킹, 충격완화장치 등을 설치해 지진 충격이 오면 흔들리다가 다시 반사해서 제 자리에 돌아오게 설계돼 있다.

높이 635m의 스카이 트리(Sky Tree) 탑이나 도쿄 타워도 무사했다(예전 관동대지진 때는 14층 건물이 붕괴된 바 있다). 현재 일본에는 100년 된 목조건물이 수없이 많지만 일본 전체건물의 80%에 내진 시설이 돼 있다. 초등학교도 60% 이상 내진 보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100%를 해야 한다고 목청이 높다. 건물뿐 아니라 기상청의 예보와 훈련도 잘 돼 있다. 그래도 향후 기슈 지방의 바다에 쓰나미 경보 '소나(음향표정장치)'를 추가로 장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연방재난관리청(FEMA)의 크레이그 퍼게이트 청장은 "미국은 아는 문제도 대비하지만 알지 못하는 문제도 계획한다"고 했다.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지진이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쓰나미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일본처럼 아무리 3중,4중으로 준비해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지만 대비를 하면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이제 우리를 돌아보자.

우리나라는 전쟁 및 전쟁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면서 산업화의 길을 달리기에 바빴다. 그래서 다른 일은 미처 생각할 틈도 없었다고 변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먹고 살 만하니 '맞춤형이냐, 전체형이냐'하고 복지정책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출판 관계자에게서 들으니 시내 책방에도 개혁이나 진보성 서적이 많이 팔린다고 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치러지는 내년 대선에서는 자유, 정의, 공정, 형평에 이어 복지가 이슈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정권의 책무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나라의 힘은 우수한 제조능력, 국민정신을 풍부하게 하는 문화, 그리고 사회를 끌고가는 정치로 구성된다. 그러나 정치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쉬운 까닭에 사회갈등이 더 많이 일어난다. 최근에 일어난 동남권 신공항 및 과학벨트 선정으로 인한 지역갈등이 대표적이다.

일단 안보의식이 희박해진 것이 걱정이던 참에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 연평도 피폭사건으로 한껏 무뎌졌던 국방에 대한 관심이 쏠리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요즘 '유행'하는 복지가 관심사다. 필자는 복지 중에서도 건축물의 내진 보강, 방화, 방수, 방역, 원자력 안전의 중요함과 긴박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 이유는 역사를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터지고 난 다음에 즉,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너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 일제식민지화가 그랬고, 6·25전쟁이 그랬다. 또 일본과 같은 대지진은 없었지만 크고 작은 태풍이나 폭우로 인한 피해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일본과 같은 대재앙이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하기만 하다. 실제로 일본 외에도 2008년 중국 사천성 지진(7만5000명 사망), 2004년 인도네시아 발리의 쓰나미(25만 명 사망 및 실종) 등 한국과 가까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대지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도 안전지대가 없다고 할 만큼 멕시코, 칠레,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 등에서 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더 이상 한국은 지진 지역 밖이라고 하면서 약간 관심을 보이는 척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일본 동북관동 대지진을 보면서 드디어 우리도 지진 대비에 눈을 뜨는 듯해서 다행이다. 또 원전의 안전대책도 재검토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선진국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투자를 충분히 하고 있느냐?", "과연 우리의 도시는 내진 설계와 내진 건축이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가?", "재난대책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안전을 위한 투자는 아낄 것이 아니다. 사고가 한 번 나면 대형참사로 이어지고, 복구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예컨대 아무리 쓰나미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제일의 기준을 갖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계속되자 서유럽 143개의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 점검에 돌입했다.

미국 뉴욕에서 50마일 거리에 있는 인디안 포인트 소재의 원전도 폐로를 검토한다고 한다. 또 3월 31일에 도쿄를 방문한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세계의 공통 안전기준을 금년 내에 결정하자고 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핵전쟁의 공포에 비유함으로써 유명해진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것이 있다. 이제는 다모클레스 왕의 머리 위로 말총 한 올에 매달린 검이 원자력인 것이다.

진정한 복지는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에 그 뿌리가 있다. 덧붙여 세계 정세를 정확히 읽어내면서 식량, 수자원,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원칙을 소홀히 하면서 인기에 영합하는 각론에만 매달린다면 그런 '작은 복지'는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한때 잘 사는 나라였던 아르헨티나, 필리핀 등의 나라가 오늘날 고생하는 것도 이런 큰 틀의 복지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이로 인한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매일 혈투를 벌이고 있다. 13만 명이 피난생활로 고통을 받고 있고, 아직도 수많은 행방불명자를 수색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일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일본의 지인들에게 작은 위문품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인 해석이나, 편협한 반일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게이오대학의 방문교수로 자주 일본을 방문하는데 일본인들은 이웃 나라 대한민국의 도움과 격려를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지식층은 이번 기회에 미일관계, 한일관계가 획기적으로 두텁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부디 이웃 일본의 피해가 빨리 복구되고, 또 우리는 재해에 대비하는 지혜를 한층 끌어올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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