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百年大計)와 할고충복(割股充腹)
백년대계(百年大計)와 할고충복(割股充腹)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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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숙/시인
정말, 앞으로 욕을 많이 하는 학생은 상급학교 진학 시 불이익을 받게 될까. 제발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댁의 자녀가 평소 욕쟁이라서 학교장 추천에서 제외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학부모는 현실적으로 없을 것 같다.

지난 6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고등학생 한 명이 학교에서 4시간 동안 385번의 욕을 할 정도로 욕이 일반화되는 것을 교육 당국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가정 학교 사회가 연계해 학생들의 언어 순화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교과부는 ‘학생 언어문화 개선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 핵심은 욕설이 심한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영역에 기록하여 상급학교 진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게 한다는 것과 언어문화 개선 선도학교를 선정하고 학생과 교원을 대상으로 ‘고운 말 쓰기 UCC 공모전’ 등을 개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이젠 이런 뉴스까지 듣고 살아야 하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도 안 읽었나. 우리 아이들이 왜 그 예쁜 입술에 욕을 달고 사는지를 높은 양반들만 아직도 모른다. 자기 자제들은 국내산교육을 받지 않는 관계로 그러니 월급 받고 앉아서 이 같은 연구나 하지! 꾀를 내도 꼭 죽을 꾀나 내고.

묻는다. 약육강식의 동물사육장으로 변해버린 현행 이 입시제도와 교육현장을 누가 만들었는가. 지금 그린마일리지제 라고 해서 초중고 교실에서들 이미 시행해온 결과가 요 모양 요 꼴인데. 이것도 약발을 안 받으니 여기다 대학입시까지 끌어들이겠다? 선생들 잡무가 적어서? 아예 각 학교에다 욕설기록담당관을 두시지.

이러다간 친구끼리 배고픈데 김밥 한 줄 사먹으러 가자고 해 담 뛰어넘다 자신도 몰래 입에서 욕이 튀나오면 그걸 옆에서 폰으로 녹음을 해뒀다가 심사가 틀리면 신고해버리는 일까지 생기는 건 아닐지. 상사가 구름을 가리키면 비가 온다고 해야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세상이니 눈치 빠른 일선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욕설 정도를 어떻게 파악하고 평가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시간에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일제고사 문제집풀이 말고 당장 윤동주의 ‘서시’를 외우게 해보자. 중학생에게도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나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그리고 고3에게도 유치환의 ‘바위’나 ‘생명의 서’만 강요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는 이보다 행복하다는 ‘행복’을 노래하게 해보라. 그래도 그 입에서 욕부터 나올까.

우리 집 담장은 모 고교 후문 담과 교집합(交集合)상태다. 이곳이 처음에는 이 학교정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이 타교 두 정문과 사실상 붙어있고 이 학교들끼리도 담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관계로 몇 년 전부터 학교에서는 이곳을 후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올 3월부터는 학생생활지도의 명목으로 이 문에다 자물쇠를 채웠다.

학생들은 음료수나 김밥 하나를 사먹기 위해서 이 철문과 옆 담장을 뛰어넘기를 반복해오고 있다. 이때 또래집단이 특성이 요 학생들 입에서 뭐가 튀어나오겠는가. 이 상황이 아니더라도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인데. 
학생들에게 담 뛰 넘는 연습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보기에도 너무 비교육적이라 그동안 학교에 수차례 얘기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 욕이 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을 때는 “나, 네 엄마 친구다. 너 엄마 앞에서도 그렇게 말하나!” 라는 말도 해야 했다. 그러다 얼마 전엔 “녜. 전 제 여자 친구 앞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라는 고수(?)를 만나기도 했다.

이처럼 교문을 활짝 열어줄 생각은 안하고 여기에다 욕까지 점수화 해 아이들 욕설 문제를 풀어가 보겠다. 이는 백년대계는커녕 할고충복(割股充腹)이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어찌 허벅지 살을 베서 배를 채우려하는가! 이 시간에도 옮기기가 민망한 고딩들의 욕설이 담장을 넘고 있다. 이들이 가방에 시집 한 권을 넣어 다니게 하여 저 뛰는 가슴이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를 부르게 좀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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