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내 나이 오십을 넘기고 ‘사랑하기 딱 좋은’ 육십에 육박해 간다. 어제 늦은 설맞이 친구만남을 하고 보니 이 친구들이 내게 뭘까. 지난 날들엔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다가올 때엔 또 어떤 모습의 관계로 남을 것인지. 내 친구 하면 우자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하게 된다.
우자! 이 친구는 친구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나마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아 빌붙었던 친구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가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싶다. 염치도 철딱서니 없던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그 당시 우자는 엄마 아빠를 사고로 잃은 시조카들 셋과 자신의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때다. 시조카 셋을 맡게 되던 날, 우자는 세 시간을 허공을 보며 소리쳐 울고는 사명으로 받아들이자고 결심하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세 시간을 소리쳐 울었다는 소리를 처음 듣고 지금까지 가슴이 아프다.
우자는 진짜 가난하지만 마음씨만 착한 남자를 만나 조카들을 맞이하는 그 때까지도 가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자는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가난을 당해 급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체험해가고 있던 때였다. 남편이 가난한 집 출신이라곤 해도 그게 무언지 긴가민가 하다가 딱 사람 ‘화~안장’하게 하는 괴물이라는 걸 체험하고 있던 때였고. 그로부터 이십 년 동안 그야말로 ‘쌩고생, 개고생’을 하고 다섯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뿐만 아니라 가정 경제도 진보 발전시켰다. 사명완수!!! 대단한 친구다. 나는 그날 이후 쭈욱~ 신세를 지고 있다. 신세를 갚을 날이 속히 있기를!!!
경희 이야기를 하자면 안타까움이 급히 고개를 치켜든다. 이 친구는 사고뭉치다. 맨날 다친다. 십 년 전쯤에 당한 교통사고 이후 부쩍 더 자주 다치는 것 같다. 우자와 함께 어제 만났을 때도 오른손을 붕대로 친친 감고 있었다. 채를 썰다 채칼에 엄지가 끼었고 그 부분 힘줄까지 찢어졌다. 손바닥의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혼자서 가게를 꾸리고 있는데 2주째 공치고 있다. 둘러앉아 식사 중에 우자의 남편이 경희에게 농담을 했는데 잊혀지지 않는다. “우짜모 그리 자꾸 다치요?” 밤늦도록 얘기하고 노는 중에 내가 정말 궁금하고 안타까워서 물었다. “왜 자꾸 다칠까?” 우자가 담담히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정확한 진단이기 때문이었다. 경희는 혼자 온갖 일을 해서 딸 둘을 국문학자로 유치원 선생님으로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리고 작년에 두 딸을 한꺼번에 결혼을 시켰다. 아마도 경희의 가슴엔 시커먼 맨홀이 파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늙어간다는 이 엄혹한 사실을 각인해야 하는 나이다. 사랑하기에도 딱 좋지만 말이다. 단언컨데 젊은 날의 집중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독종이거나 말종이거나.
명순이는 비교적 최근에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친구다. 화려한 유년기를 간직한 친구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그랜져를 탔다나 어쨌다나. 다 악몽인 것을. 이 친구를 통해서 화려한 과거는 인생에 있어서 독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한번 흘러간 화려함은 좀처럼 다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크고 작은 성취를 다 스스로 업신여기게 된다. 성취가 흔히 얘기하는 ‘복’일 것인데 자신이 받은 복을 업신여기니 될 일도 잘 안 풀리더란 말이다. 내가 우자에게 신세만 진다면 이 친구는 나에게 신세만 진다. 내가 아무리 ‘씨알머리’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도 이 친구는 은혜를 갚니 못 갚니 미안해 한다. 이 친구가 왜 자꾸 실패만 하는지 그 원인이 뭘까? 자문해보지만 별 뾰족한 답이 없다. 정확한 원인을 안다고 해도 별로 도움되지 못한다. 이미 실패하는 습관이 몸에 익을 대로 익었다. 습관은 지독하게 질기다. 나쁜 습관은 더욱 더!!
고물상을 하는 이 친구를 친구라고 하기엔 아직 조금 일러기는 하다. 그래도 젊은 날의 성실함이 고마워서 친구에 포함하기로 했다. 또한 그 성실함이 사회적 사명감으로 발심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이 친구는 엔간히 생겼고 키도 크고 노래도 잘 한다. 게다가 돈도 엔간 있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걸 매일 할 만큼의 재산은 아니다. 그러니 돈 쓰는 걸 취미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 와서 살자니 매사가 어중간하다. 주변에서 인기가 있다곤 해도 진짜 '스타'는 아니다. 돈도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행복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할 일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할 일을 아는 것도 같다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싸나이' 로 태어나서 무얼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른다. 이 친구는 그러니까 사회성을 상실해버렸다. 개인성마저 사회성을 따라 사라졌다. 나라는 개인이 포함되어 사회가 되는데 그 사회가 내 속에서 고사해 버렸으니 그 속의 '나'라는 개인도 사라질 수밖에. 이야말로 비극이다. 이 친구의 이런 비극이 우리 대부분의 비극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사회적 비극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상기하다 보니 친구들이 꽤 많지만 지면 때문에 한 사람만 더 상기하자. 계수씨! 원래 남편의 친구인데 이제 와서 오히려 나와 더 친하다. 이 친구는 막내로 태어나서 그런지 유난히 외로움을 타고 친구들을 밝힌다.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면서도 일년에 한두번은 친구들을 불러모으는 수고를 자처한다. 덕분에 우리는 모처럼 만나서 잘 논다. 이 친구는 외로움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 속는다. 좀처럼 속시원한 성공이 찾아주지 않는다. 친구들을 밝혀 사람들을 좋아한 댓가인지 딱 부러지게 실패하지도 않는다. 사람좋게 잘 살아간다.
내 모든 친구들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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