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농촌총각들 결혼 도와드려요"
"짝 없는 농촌총각들 결혼 도와드려요"
  • 함양/노승원기자
  • 승인 2015.03.30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촌총각장가보내기운동 김홍업 본부장

▲ 김홍업 본부장은 제가 주선한 결혼한 부부가 잘 살고 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 수많은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너도 나도 중개업에 뛰어 들었다가 부실한 결혼 중개로 현지에서 혹은 국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문을 닫는 일도 허다하며 국제결혼에 대한 불신도 많이 생기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농촌총각장가보내기운동본부 김홍업 본부장은 2001년부터 현재까지 네팔만 전문으로 결혼 중개업을 해 왔는데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농촌 총각들의 짝을 만들어 주고 있다.


다음은 김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현재 주로 어디서 활동하고 계시며 요즘 근황은 좀 어떠십니까
▲요즘은 예전보다 농촌 총각 결혼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산청, 함양, 거창의 읍·면 지역을 돌다 보면 가정을 꾸리지 못한 총각들이 하루 일이 끝난 후 무료함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술로서 한 세월을 보내는 것을 흔하게 봅니다. 저는 이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어야 새로운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꾸준히 그들과 대화하면서 네팔 처녀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도 꾸준히 소개가 들어와 직접 방문과 상담 일로 아주 바쁩니다.

-농총총각장가보내기운동은 언제부터 하셨으며 많은 나라 중 하필 네팔을 선택하신 이유라도 있는지요
▲2001년 초순경부터 농촌총각장가보내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2004년도 17대 총선을 위해 시작을 했습니다. 당시는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제 사비를 보태어 결혼을 주선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선거법에 저촉되어 결국 출마도 하지 못했습니다.
네팔을 결혼 상대국으로 선택한 이유는 2001년 4월 22일 KBS 취재파일 ‘아내를 찾아주오’를 보다가 국제결혼 배우자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피해자가 하필 제 고향 친구였습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중국까지 가서 조선족여자를 데려왔는데 보름 만에 집을 나갔다는 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어렵게 결혼한 친구가 실의에 빠진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다가 마침 제가 몸 담은 외국인 합작회사의 장점을 활용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네팔은 우리나라 70년대 문화와 흡사하고 종족 중에는 몽골리안도 있어서 우리나라의 총각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확신을 갖고 결혼을 주선하게 됐습니다.

-네팔여성과의 결혼중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가장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해외 출장을 가장 먼저 간 나라들이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지역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출장 중에 인간관계를 맺은 지인들을 활용해서 한국에서 최초로 결혼을 주선했고, 2008년 상반기까지는 신부들 고향의 광역자치구 사무소를 직접 방문해서 혼인등록을 해야 해서 75개 자치구 중 40곳의 자치구 사무소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가 됐고, 현재는 결혼한 신부들의 힘으로 신부 후보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관여하다 보니 영어와 네팔어를 통역 없이 하게 되어 직접 모든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 통계를 보면 네팔은 아주 미비하나 함양, 산청, 거창, 진주에 주로 많이 있고, 네팔 신부들은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문제점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혹 문제가 발생하면 제게 바로 연락이 되고, 제가 쉽게 가정을 방문하다 보니 문제점들이 잘 해결되고는 합니다.
또 다른 비결은 네팔 현지인들도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신부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탈을 하는 경우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탈이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에서도 재 결혼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지역에서는 남편 집에서 이혼을 요구해 법원에서 이혼을 한 3명의 신부들이 재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네팔여성은 아이가 있으면 99% 이상 정착하여 잘 살 수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 네팔 여성의 이탈이 많다고 나오는 것은 첫째, 신부에게 남편 본인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을 안 하고 속이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한국에 입국해서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3개월 정도 있다 이탈해도 된다고 교육을 받고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팔은 선 혼인 신고제라 합법적으로 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합법적으로 위장결혼을 많이 하려는 대상 국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위장결혼을 막기 위해서 혼인등록이 끝나면 신부 집으로 신혼여행을 보냅니다. 신혼생활을 신부 집에서 하게 되면 주변의 지인과 친지들에게 확실하게 결혼했음을 알리는 과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네팔은 지금도 가족 중에 이혼한 사람이 있으면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생각을 하므로, 가능하면 네팔 신부 집에서 신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무역 전공 외국과의 교류 많아   
지인 활용 처음으로 결혼 주선

도시화로 농촌총각 미혼률 증가 
네팔신부와 약 700쌍 정도 중개
결혼 전 문화이해 등 교육 필수
 
“내 역할은 충분한 소통 과정에서 
진정성 전달·결혼 후에도 도움” 

-----------  

-네팔 외에 다른 나라의 국제결혼중개업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가 한국인과 주로 국제 결혼하는 나라를 방문해서 알아보니, 네팔보다 좋은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네팔은 영어와 인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문화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또한 네팔은 다민족 국가라 원하는 배우자의 외모를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다른 나라와의 결혼중개업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몇 쌍이나 중개를 하셨습니까
▲약 700쌍 정도 중개를 했습니다. 종교단체에서 하는 중개를 제외하고, 개인이 중개한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KBS에서 매주 화요일에 방영되는 ‘러브인 아시아’라는 프로그램에 방영된 네팔 신부들은 거의 제가 주선한 신부들입니다.

▲ 김홍업 본부장의 주례로 지난 2004년 함양 상림에서 20쌍의 커플이 국제합동결혼식을 가졌다.
-이 사업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는 때와 힘들었던 때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주선해 결혼한 부부가 잘 살고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맙다고 인사를 들을 때, 2세들이 태어나서 학교에 입학해 잘 적응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보람 있습니다.
반면에 힘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정말 잘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하여 결혼을 주선해도 약 10% 정도 이탈률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이혼을 하면 당사자 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자매들도 함께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국제결혼해서 잘 살아가는 부부가 많은지요? 이혼하는 부부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문제가 가장 큽니까? 또 잘 사는 부부의 비결이라도 있는지요
▲제가 주선한 사람들은 80% 이상이 잘 살고 있습니다. 국제결혼의 문제점은 현지에서 결혼을 주선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 속이는 것 없이 진정성 있게 과정이 진행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현지에서 결혼을 주선하는 사람을 모르고 출국 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결혼정보업체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 결혼을 하도록 설득하는 경우, 오히려 문제가 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국제결혼을 위해 소개비를 받으며 결혼을 위탁하게 됩니다. 결국 당사자와 결혼정보업체는 서로 잘 알지 못한 채로 결혼이 진행되고 결혼 후에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발생문제들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제가 주선하는 결혼성공률이 높은 이유는 결혼 할 당사자의 거주지와 사업장, 부모님을 직접 만나서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원하는 배우자상을 충분히 협의하여,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설계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사항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함양, 산청, 거창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항상 밥을 해주시는 92세인 노모와, 제가 하는 일에 항상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서울에서 교직에 근무하는 아내와 아들, 딸이 있습니다.

-다문화가정 형성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시는 분으로서 지자체나 이웃이 다문화가정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도울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다문화가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서로 어울리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결혼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둘째, 결혼을 주선하는 사람들은 문화와 성향 등 가장 잘 아는 한 나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같은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끼리의 결혼도 위기가 오는데 문화와 성향이 다른 나라 사람끼리의 위기는 어쩌면 더 자주, 더 힘들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먼저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가정의 사람들의 도움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들의 선배적 경험이 많은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아내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는 전문가에게 빨리 도움을 받아서 서로 간에 감정 상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지자체도 정치적인 이념의 상이성을 떠나, 국가의 지원을 받아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결혼 주선 전문가를 초빙해서 꼭 교육을 받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국제결혼자격이 까다로워졌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크게 바뀌었습니까
▲국제결혼자격으로는 연간 소득이 1500만원 이상, 직업 보유, 신용불량자 불가능, 전과 조회 등 조건이 강화됐습니다. 또한 신부는 현지에서 6개월 간 한국어 교육을 받아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국제결혼을 하려는 우리나라 총각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말씀해주십시오
▲결혼할 당사자는 자신에 대하여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혼 전에는 전문가에게 꼭 교육을 받고 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이 일을 하시면서 가장 추억에 남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 주십시오
▲남들이 다 아는 좋은 대학교까지 나온 사람이 있는데, 제가 4년 동안 설득을 해서 네팔 처녀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부부금슬이 아주 좋고, 지금은 오히려 그 사람이 결혼할 사람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개해 제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업 번창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함양/노승원기자

김홍업 본부장은...
 -1961년 거창군 마리면 율리 출생
 -(현)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마로 거주
 -한국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무역학과 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공공정책학과 졸
 -서울지역 예비역 복학생 대표자 협의회 부의장
 -1987.6.10 민주항쟁주역(직선제개헌투쟁)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총학생회 회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총동문회 회장
 -사단법인 대양무역전문학교 강사
 -(주)금강물산 배트남 현지법인 부회장
 -(주)인스파이어 미국현지법인 대표
 -(주)쓰리핸드 회장
 -시단법인 한국BBS총장 표장
 -제35회 무역의 날 한국무역협회장 표장
 -제37회 무역의 날 오백 만불 수출의 탑(대통령상)수상
 -(현)한국외국어대학교 총동문회 운영이사
 -(현)비엔에프전자 다카현지법인 부회장
 -(현)세계 다문화가정 교육원(네팔) 회장
 -(현)농촌총각장가보내기 운동본부 후원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