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쾌거
남편의 쾌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3.3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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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나는 평소 남편을 무시했다. 근데 그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 친구도 남편을 무시하고 내 친구의 친구도 남편을 무시하고 내 이웃도 그렇고 내 이웃의 이웃도 그렇다. 용케 겉으로는 고분고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알고 보면 더 남편을 개무시하더란 말이다. 누군가 남편되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흥, 하고 콧방귀를 튀기곤 말할 것이다. 내 친구는 물론이고 내 사돈의 팔촌도 마누라를 무시하거든, 이라고 하겠지. 아마도 남편과 마누라의 같잖은 줄다리기는 이렇게 끝이 없을 것이다.


남편을 무시하는 일이 일상으로 몇 십 년을 살아왔다. 게다가 나는 잘도 살아왔다. 남편은 시를 쓰고 나는 소설을 씀네 하며 산다. 남편보다 먼저 등단이라는 것도 하고 제법한 상금도 받고 장편도 세 권이나 내면서 더욱 남편 알기를 발가락 새 때만금 여겼다. 내가 그러는 사이에 남편은 시를 쓰는지 죽을 쑤는지 아주 가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맞춤법을 물어오곤 했다. '살다보면'을 쓸 때 살다 하고 띄어야 하는지 붙여야 하는지 따위를 어눌하게 물으면 나는 지난 달 생활비를 온전하게 못가져온 것을 상기하며 눈부터 흘겼다. “아, 국어 사전은 뒀다 곰탕해 먹을 껴??” 하고 퉁박을 날렸다.

어느 때부턴가 남편은 나에 대해 모종의 포기를 했던지 혼자서 굼지럭거렸다. 그래도 아침 밥은 내가 했었는데 그것마저 팽개치고 어느 때부턴가, 나 또한 모종의 포기를 하고 편하게(?) 살았다. 정말이지 편했다. 평생 함께 자취를 하는 친구처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편했다. 왕년에 친구와 자취를 해봐서 아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자칫하면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시비가 붙고 시샘에 독이 오르고 하다 보면 기어이 찢어져야 했다. 그 쓸쓸함이라니! 그에 비해 못난 남편에게는 그야말로 내 멋대로 해도 별탈이 없었다.

며칠 전 휴일을 맞아 문우들 모임이 있었다. 남편은 시인으로 나는 소설가로 함께 참석하는 3달에 한 번 있는 모임이라 썩 내키진 않았지만 참석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마음 저변에는 이번에 출간한 칼럼집 ‘절규’ 홍보를 하겠다는 욕심이 깔려 있었다. 벌써 며친 전서부터 보도 자료를 출력해서 준비해 두었다. 내가 내 책을 가지고 간다고 하니까 남편이 뭐라 중얼중얼 불평을 했다. 오늘은 자기의 책을 두 종류나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뭔 두 종류나 있대?? 팩 쏘고 남편을 봤더니 이미 라면 상자 두 개를 낑낑거리고 들어서 차에 싣고 있었다. 아직 출발하자면 1시간이나 남았는데 미리 실어둔다는 것이었다. 내 책을 따돌리려는 심산일 것인데 책 상자를 보자 뭔가 상기되는 게 있었다.

벌써 몇 달 전에 어느 유명한 문학박사가 남편의 시를 비평해서 어느 계간지에 비중있게 실었다. 그리고 얼마 후엔 그 계간지에서 소시집 코너를 마련해서 남편의 시를 실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상기되었다. 나는 부랴부랴 두 종류의 책을 남편에게서 받아들고 급히 검토에 들어갔다. 이미 내 머릿속엔 아주 중요한 영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계간지 ‘시조문학’ 지난 겨울 호와 이번 봄 호였다. 지난 겨울 호에는 김준 문학박사의 김토배 비평이 약 열 쪽에 걸쳐 실렸고 이번 봄 호에는 남편 김토배의 시조가 무려 40여 편이 실렸다. 나는 바로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니 아빠가 대단한 일을 당했네. 한 계간지가 겨울 호와 봄 호에 연이어 이렇게 비중 있게 한 시인을 다루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야. 도종환쯤 돼야 되는 일이라구. 그래서 말인데 이건 그냥 책만 나눠줄 게 아니라 아예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홍보를 해야 해! 지금 바로 시작해, 한 시간이면 가능한 일이야” “어떻게요?” “뭘 어떻게?......... 안 되겠다. 일단 두 책 표지 넣고 아빠 프로필 넣어서 죠. 글은 내가 쓸게. 어서 컴퓨터 켜!!”

아들은 아직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래도 내 서슬에 못이겨 컴퓨터를 켜고 보도 자료꼴을 만들었다. 나는 김준박사의 비평을 인용하고 남편의 시를 인용해서 원고지 열 매 가량의 보도자료 원고를 작성했다. 출력했더니 아주 훌륭한 보도자료가 되었다. 나는 아들을 칭찬하고 그제야 남편을 알아주었다. “야아, 남편아, 대단한 일을 해냈네!! 이건 진짜 대단한 일이야. 내 책은 다음에 내밀어도 되니까 오늘은 당신 책만 가지고 가자고. 글고 이렇게 보도자료도 만들었어. 요새도 ㅇㅇ신문 기자 아무개 오지?”

모임에서 문우들도 놀라며 남편을 격려했다. 숫기없는 노총각의 짝사랑처럼 요령피우지 않고 꾸준히 시조를 사랑해온 대가라며 모두 기뻐해주었다. 아무개 기자도 이거야말로 기사꺼리라고 말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애썼다는 내 말에 남편은 모처럼 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 한 구석은 어쩐지 미안하구먼, 평생 한 번도 안 실리는 시인들이 많은데.......... . 차창밖으론 개나리가 피고 벗꽃 또한 막 피려고 야단이었다. 남편이 못난 건 마누라에겐 모종의 숙명 아닐까? ㅋㅋ남편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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