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철학
눈의 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4.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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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눈에 좀 탈이 나서 안과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기다리는 동안 우연히 이런 글을 읽게 되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며,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얼굴의 표정도 고요하게 나타난다. 눈은 사물을 관찰하고 그 가치를 판단한다. 눈은 입처럼 말을 하고 귀처럼 말을 듣는다. 눈이 맑다거나, 차갑다거나, 빛난다거나, 그림이 있다거나 시가 있다는 말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천태 만 가지로 변하는 것이 바로 눈이다. 기쁨과 시름이 있고, 두려움과 교만함이 있으며, 차가움과 따뜻함이 우리 눈 안에 존재한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한다. 그것은 눈이 곧 그 사람의 모든 것, 이를테면 인격과 성품과 교양과 모든 아름다움을 대신하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력있는 빛을 풍겨주는 지적인 아름다움 외에 감성적인 아름다움도 눈에 나타난다.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된 아름다운 눈, 그런 애정의 눈은 마음을 열고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맑은 눈이다” --노라 S. 킨저, ‘스트레스를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듣던 말이다. 그런데 여기 그 말이 있었네? 반가웠다. 이곳이 그 발원지인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에 참 좋은 말이다. 나도 100% 공감한다. 눈빛은 분명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고운 눈을 위해서라도 지성 감성 양면으로 내면을 닦아야겠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수긍했다.

물론 글을 쓴 이 분이 물리적인 눈의 기능과 가치에 대해 무심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너무 기본이니까 아마 언급을 생략했겠지. 우리에게 눈이 있고 그것이 사물들을 본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입이 있고 그것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귀가 있고 그것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 그런 것들과 더불어 인간의 기본이요 삶의 기본인 것이다. 눈이 없다면 볼 수가 없으니 그런 큰일이 없다. 그걸 생각해본다면 눈이 있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은 너무너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도시의 온갖 아름다운 풍경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 TV 만화 루브르의 명화들심지어 어여쁜 그녀의 눈부신 미모도 보는 눈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만일 이 모든 것들을 볼 수가 없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보스턴에 살고 있을 때 매일 밤 챙겨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해 인기를 끌었던 [초원의 집]이라는 드라마다. 거기에 주인공 중의 하나로 큰딸 메리가 나온다.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야무지고흠 잡을 데 없는 아가씨다. 그 메리가 어느 날 시력을 잃고 볼 수가 없게 된다. 그걸 보며 나는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정말 가슴 아프게 실감했었다. 내가 인간학강의에서 종종 언급하는 헬렌 켈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겨울연가의 준상이를 사랑하는 일본의 오바상들에게도 아마 비슷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저 유명한 형이상학첫머리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로 그 중요성을 확인해준다. 만학의 아버지인 저 권위자의 말이다. 이 말이 그 대단한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다는 것이 어디 우연이겠는가.

아마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다는 것은 단순한 육안을 벗어나 그 의미를 확장한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눈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이른바 마음의 눈, 정신의 눈, 지혜의 눈, 그런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 미래를 보는 눈, 그런 것도 있다. 참고로 내가 전공한 철학에는 현상학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거기서 강조하는 직관이라는 것을 후설은 현상학적인 보기’(phänomenologisches Sehen)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처의 이른바 혜안과는 좀 다르지만, 이것도 일종의 진리를 보는 눈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다 눈은 있지만 눈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눈은 아니다. 그 눈이 무엇을 보는 눈이냐에 따라 눈의 질이, 눈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이다. 누군가의 눈은 한치 앞도 못보고 누군가의 눈은 10100년을 내다본다. 누군가의 눈은 이익만 보고 누군가의 눈은 의로움을 본다. 누군가의 눈은 나무만 보고 누군가의 눈은 숲을 본다. 그 모든 것이 다 눈인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을까. X눈에는 X만 보인다고 설마하니 그런 X같은 것만 보고 있는 일은 없어야겠다. 철학의 눈으로 보면 세상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 , 그런 것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잘 보지 않는다.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흰 눈을 뜨고 백안시한다. 문학도 역사도 철학도 이젠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세상의 눈은 그저 돈만 바라본다. 자리만 바라본다. 명예만 바라본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도 온기가 없다. 사람들은 곧잘 날선 눈으로, 모난 눈으로 사람을 바라본다. 그런 눈초리가 사람에게 닿으면 아파진다. 상처가 난다. 더러는 가슴속에 피도 흐른다. 사람의 눈동자가 동그란 것은 둥글게 원만하게 바라보라는 의미인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재미삼아 써본 시 한편을 소개한다.

<도덕의 발견>

창문은 네모다/ 책은 네모다/ 스크린은 네모다// 티비도 네모다/ 피씨도 네모다/ 신문도 네모다// 모두 네모다/ 세상과 인생이 네모 속에 다 있다/ 네모는 굉장하다// 그런데 보는 눈은 동그라미다/ 고로/ 원만한 것이 모난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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