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동네 화전민
하늘아래 첫 동네 화전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4.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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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구절양장(九折羊腸)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꼬불꼬불한 고갯길 작은 계곡을 끼고 험한 비포장 산길로 접어들어 힘겹게 오르니 산자락에 슬레이트지붕이 띄엄띄엄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산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어 농사짓던 화전민들이 사라진지는 오래다. 화전정리사업이 시작된 것은 1969년도 산림청이 발족되어 내무부로 편입된 몇 년후 1974년부터 76년까지 화전민에게 이주비용을 국가에서 주어 산아래 지역으로 옮겨가게한 후 화전에 나무를 심어 산림녹화를 했다.
 
그러나 아직도 하늘만 빠꼼하게 보이는 하늘아래 첫 동네인 산간 오지마을에는 화전민들의 후손들이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며 삶의 텃밭을 가꾸고 있다. 전국에서 화전민이 제일 많은 도는 강원도, 다음은 경북, 경남 순으로 많았다. 개간 초기만 해도 벌채한 나무를 이용해 날림으로 지은 방 두칸과 부엌 한 칸의 7평짜리 ‘성냥갑’만한 집에 둥지를 틀고 흙먼지가 일어나는 푸석푸석한 황토흙을 파면서 생활터전을 마련했으나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산에 불을 붙여 개간한 화전은 첫해에는 나무 뿌리가 있어 괭이로 땅을 파헤치지만 두해가 지나면 나무 뿌리가 썩어버려 소갈이를 할 수가 있고 밭모양이 갖추어진다. 첫해에는 대개 조나 메밀을 심고 그 다음 해부터는 감자, 옥수수, 콩 따위로 바꾸어가면서 심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고랭지 채소를 재배한다.

겨우내 높은 산에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4월 중순부터 감자를 심어 7월에 수확하고 다시 그 자리에 보름정도 길러둔 가을배추를 다시 심게 되는데 추석을 전후한 9월 20일께면 트럭에 실려 나갈만큼 자란다. 감자와 배추의 이어심기가 고랭지의 특성을 살린 경작법이다. 가끔 들리는 이동백화점인 식품차량을 이용해 생필품을 구입해 쓰기도 하고 읍내로 나가 한꺼번에 구해다 쓰기도 한다.

햇살이 따가운 계절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옷섶에 파고드는 해발 천m의 산간마을은 5월까지 난로를 피워야 할 정도이니 여름밤 모기의 극성은 극정할 필요도 없다. 대부분 농촌지역처럼 젊은이들이 드물고 장가못간 40대의 노총각도 있으나 술, 담배를 멀리하고 화투를 치지 않으며 주민단합이 잘 된다.
품삯이 올랐어도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산아래 마을에서 모셔와야 하는 실정이고 긴긴 겨울나기가 무엇보다 고통스럽다. 10월 하순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여 이듬해 4월까지 눈이 쌓여 1년의 절반을 은빛적막 속에서 지낸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치우는 것이 겨우내 하는 일이다. 자줏빛 싸리꽃 내음에 묻어오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산을 서두를 때 하늘아래 첫 동네에 노을이 곱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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