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국민의 나라
눈먼 국민의 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4.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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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나는 정치가도 아니다. 관료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평범한 시민인데 무명이기는 하지만 작가이기도 하다. 하다 보니 높은 양반 누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고 부자 누구의 돈을 땡겨 먹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작가이다 보니 가판대에 진열되는 일간지 정도는 챙겨보는 편이다. 바쁘면 헤드라인이라도 각 신문들끼리 비교하며 읽는다. 요즘 며칠 동안 너무 이상한 현상에 놀랐다. 이른바 ‘성완종의 55자’에 대한 기사를 읽어오면서 초기에는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별 의혹이 없었다. 워낙에 55자의 메모가 구체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모종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하다.

범죄에 대한 제보자가 저기에 용의자들이 있다고 목숨을 걸고 손가락을 비교적 정확히 세워서 지적을 했는데 지적을 당한 사람들은 가만히 내버려두고 지적을 한 사람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적을 한 사람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버렸으니 망정이지 살아있었다면 분명 저들의 손에 목숨이 요절이 났을 것이다. 성완종씨는 마지막 힘을 다해 8명이라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뜻을 적은 메모를 남겼다. 그 8명 속에는 박근혜대통령의 전현직 비서들 세 명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총리도 있었다.

이 메모가 밝혀지자마자 국민들은 거기에 적힌 총리를 가장 먼저 단죄했다. 결국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총리가 물러나고 나서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주요 일간지를 통해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슬쩍슬쩍 나와서 “8명 외”에 뭔가 있다는 말을 흘렸다. 8명은 이미 밝혀졌으니 그 외의 뭔가가 궁금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이 ‘인지상정’을 그 일간지들이 아주 집요하게 부추겼다. 나도 인지상정으로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야권에 존경하는 정치인이 몇 몇 있는데 그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별 같잖은 걱정까지 들었다.

걱정하는 속에 기다렸다. 저들이 저렇게 자꾸 말할 때는 8명 외에 누군가 중요한 사람이 또 나오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8명 이외의 플러스 알파에 수사의 촛점을 맞추겠다는 아리송한 말만 할 뿐 새로운 이름은 발표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근혜대통령의 두 번째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이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일본을 급히 갔다가 급히 돌아왔다. 마치 나는 아무 잘못도 없기 때문에 외국을 요렇게 쉽게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우짤래?? 하면서 국민을 약을 올리는 듯했다. 우리 국민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주요한 비리에 연루된 주요한 용의자에 대해 출국금지 명령도 안 내렸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8명 이외에 플러스 알파가 수백 명이 있어도 명백한 용의자 8명에 대해서는 마땅히 초동수사가 있어야하는 게 가장 우선 순위라는 그 명백한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제보한 제보자의 회사만 작살나는 것 같다. 증거인멸 죄를 물어서 그쪽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양이다. 그것도 놀랍고 이상하다. 증거인멸이라면 8명은 증거인멸을 한 열 번은 더 마무리했겠다. 제보를 한 쪽은 그렇게 당하는 동안 그 8명은 아직도 구속하지 않고 있다. 참고인으로 조사도 안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게 뭐냐는 거다. 법이고 정치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건 아니지 싶다.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던 성완종씨를 편들자는 건 아니다. 설사 그 사람에게 죄가 8명보다 많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고인이다.

법은 공평해야한다. 법은, 만인 앞에 공평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으뜸이다. 그런데 이래서야 어디 법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백번 양보해서 8명 이외에 또 다른 용의자가 있어도 8명에 대한 수사가 가장 우선 해야하는 일이다. 그런 후에, 아니면 동시에 또 다른 용의자 수사도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문제의 8명에 대한 수사는 시작도 않은 모양이다.

지난 주말엔 법무부장관까지 인터뷰라는 명분으로 신문에 나와서 8명 이외에 명단이 더 있다는 말만 흘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법무부 장관이면 대한민국의 법의 수장이다. 우리 국민이 무얼 보고 배우겠나. 특히 자라나는 사람들은 이제 올바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분별력이 마비될 수도 있다. 그리되면 당장에는 부정선거니 부정 대선자금이니 하는 비리를 감출 수는 있어도 나라의 기강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리되면, 장차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비리가 있는 몇 몇 정치인 살리자고 나라를 작살낼 참인가!!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에 국권을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다. 권력의 수장들에게 제발이지 당부한다. 정의를 세워야 하는 때다. 정의를 앞세워 당당히 국민 앞에 사과할 건 하고 용서를 받을 건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히! 정통성을 확보해야한다. 그런 후에라야 진정 정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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