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竹) 문화
대(竹) 문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4.2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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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경남수필·진주문인협회 회원·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진주는 예부터 대숲이 유명했다. 충절의 고장이라 그랬을까. 진주성을 마주한 망경 칠암 남강 변에는 대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대숲은 진주의 문화였고 자랑이었다. 진주인의 시가 되고 노래도 되었다.


남강 둔치를 정비할 때 모두 사라질 뻔 했지만 일부나마 대밭 길을 만들어 시민의 쉼터로 만든 일은 그나마 퍽 다행한 일이었지 싶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대숲 길을 자주 걷는다. 고등학교 시절 추운 겨울밤 댓잎 비비는 소리가 응달진 자취방을 얼마나 떨게 했던가. 서러웠던 지난 일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살아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새들의 노래와 댓잎 부대끼는 소리가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로 들린다. 도심에서 느끼는 자연의 소리다. 조상의 얼이 생각나고 맑고 시원한 대숲 공기가 좋다.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끼리끼리 한갓지게 여유를 즐긴다. 젊은 연인들의 속삭임을 본다.

옛날에는 대나무가 부를 상징할 만큼 재산적 가치가 높아 마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대밭이 사라져 간다. 시대와 함께 문화가 바뀌면서 귀하게 대접받던 대나무가 무용지물이 되어서다.

산행 중 외진 산중턱에서 어쩌다 대숲군락을 만나면 참으로 반갑다. 그곳에서는 사람냄새가 풍긴다. 주춧돌이며 구들장, 사금파리와 옹기부스러기들이 옛날의 집터였거나 절터였음을 말해 준다.

예전에는 대나무가 건축자재로, 가재도구로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소재였다. 집을 지을 때는 원목 다음으로 긴하게 쓰였다. 지붕이엉과 벽에도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서 깔았고, 마루와 방바닥도 대자리였다. 대자리 위에서 궁둥이를 끌거나 무릎으로 기어 다니면 옷이 닳는다며 어머니의 성화가 심했고, 자리 틈새에 오물이라도 끼이면 지워내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문짝도 대쪽을 빗살 쳐 만들었다. 횃대와 선반, 옷을 보관하는 설기며 냉장고같이 쓰던 보리쌀 바구니, 크고 작은 떡 바구니와 광주리도 모두 대나무였다.

여름밤 온 가족이 모여 하늘의 별을 헤며 무더운 밤을 시원하게 지새우던 마당의 평상 바닥도 대쪽이었다. 담뱃대 낚싯대 간짓대, 심지어 활과 화살이며 죽창 같은 전쟁무기도 대나무였으니 옛 사람들의 삶에서 대나무는 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전설 속의 이야기다.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왔다. '대쪽 같다'라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킨다는 말로 통하지 않았던가. 노래의 주제나 문학의 표상으로 삼기도 했으며, 사대부들은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묵죽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같이 대나무는 문화의 원천이고 삶의 바탕이었지만 신소재에 밀려 언젠가부터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기에 이르렀으니 세월이 무상타 해야 할까.

그러나 어찌 알랴, 사라질 것 같던 문화가 새롭게 살아나고 한 때의 하찮은 물건들이 값비싼 골동품으로 둔갑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새로운 문화가 편리하고 좋다 해도 옛 것은 옛 것대로 또 다른 가치를 지니고 다시 태어나 새 꽃을 피우는 경우도 많다. 신소재가 아무리 좋다 해도 무더운 여름철 대자리만큼 시원한 자리가 어디 있던가.

담양은 예로부터 대문화가 유명한 곳이었다. 이름난 대밭은 물론 유명한 죽제품은 대부분 담양 산일 정도로 대 하면 담양을 떠올렸다. 그러기에 신소재 때문에 가장 타격을 크게 입었어야 할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발 빠르게 새로운 대 문화를 만들어갔다. 대나무골마다 생태공원을 만들고 테마가 있는 대밭 길을 조성하여 대나무축제까지 열고 있다. 온고지정일까. 옛 정취를 그리워하며 잊혀져가는 문화를 찾아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울산 태화강변에도 십리 대 밭길을 만들어 이름을 띄우고 있다고 한다.

문화는 자연스럽게 태어나기도 하지만 만들어가기도 하는 것. 옛 것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일도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방마다 그곳 지형과 지물을 유추하여 그럴듯하게 꾸며 전설을 만들고, 그 전설로 문화를 만들기까지 한다. 진주에도 진양교에서 금산교까지 10km 거리 강둑에 대나무를 심어 대숲길을 만든다면 진주의 아름다운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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