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이야기
이웃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5.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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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이웃! 참 징한 인연이다. 참으로, 독한 인연이다. 상가 사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산 세월이 어언 이십 년을 향한다. 많은 일들을 보았다. 더러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봤다. 더러 자연사 한 사람도 봤고 자살을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래도 다 남일이거니 강건너 불보듯 그러려니 했다. 내가 철이 드는 건지 근래들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이웃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렇잖은가, 피붙이보다 함께 사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를 낳아준 부모 형제도 일년이면 두어 번 만나는데 이웃은 매일 본다.


앞집 마트하는 부부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마트야 많으니까 뭐 살 게 있으면 옆집 마트로 가니 불편할 것도 없다. 앞집 마트에 발걸음하지 않은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눈 떠면 보아야만 해서 그런지 십년 전 내가 발걸음을 끊은 이유와 기억이 꼭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짐작되는 그 이유는 앞집 여자는 나를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상가에 들어와 있었고 돈도 꽤나 벌었는데 이제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는 나를 얕보고 견제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마찬가지로 명색이 작가인 내가 마트하는 여자에게 무시당하는 게 기분 나쁜 것도 너무도 당연했다. 결정적으로 윗집 슈퍼를 이용하는 나를 씹었다. 상가 사거리다 보니 크고 작은 슈퍼가 앞집 옆집 윗집으로 세 곳이나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윗집 슈퍼가 제일 작았다. 나부터라도 작은 집을 도와준다고 윗집을 들락거리는데 앞집 여자가 그 꼴을 못 봐 준 거지.

윗집에서 슈퍼를 하던 부부는 여자가 살짝 정신을 놓고서야 문을 닫았다. 햇살이 따뜻하던 초여름 어느날 오후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윗집 여자가 자신의 가게 앞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잽싸게 바나나 하나를 훔치듯 따서 손으로 짓이겨 진열대 밑으로 던졌다. 또 두어번 왔다갔다 하더니 얼갈이를 한 주먹 움켜뜯어내서 역시 두 손으로 짓이겨 진열대 밑으로 던졌다. 나는 놀라서 내 가게로 들어와버렸다. 팔아야 되는 물건을 잡아뜯고 짓이겨 버린다? 정상이 아닌 것도 사실이지만 금새 이해가 되었다. 처음 가지고 왔을 때는 싱싱하고 예쁘던 것이 팔리지도 않고 시들어가고 있으니...게다가 앞집 마트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리니 왜 울화가 치밀지 않겠는가. 팔리지 않고 시들어만 가는 그것들이 원수만 같았을 것이다. 가엾고 안타깝지만 망하는 걸 두고 보는 수밖에. 내가 다 살 수도 없고.

지난주엔 이웃이 두 사람이나 자살을 했다. 자살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는 모두 첫마디가 비슷했다. 어제 봤는데? 며칠 전에 조오기서 술 먹던데? 왜애? 왜 또? 였다. 한 사람은 여자로 약물중독인 듯하고 다른 한 사람은 남자인데 연탄을 방에 피우고 일을 저질렀다. 전자는 40대로 20대부터 약을 먹지 않으면 발작증세를 보이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후자는 오랜 실업 생활로 죽어있는 생활을 해왔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 같이 안 됐다고 혀를 찼다. 나는 살아 있을 때의 피지도 못하고 시든 그들의 삶이 가여워 마음이 무거웠다.

살아 있는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 누구는 우울증, 누구는 술중독, 누구는 병이 걸리고, 누구는 실업자,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배신하고, 누구는 시기질투하고, 누구는 빚을 많이 지고, 누구는 무시당하고, 누구는 정신이 나가고, 누구는 사고가 나고, 누구는 때리고, 누구는 맞고, 누구는 누구는..늘려진 불행 속에 우리는 이웃이 되어 살아간다는 이 지독한 사실이 바로 <내 인생>이라는 걸 문득 알아차렸다.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내 인생을 미워하고 언짢아하고 눈 흘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앞집 여자와 친할 생각은 없다. 친해지면 또 무례하고 시기질투할 게 뻔하다. 그러니 앞집 여자뿐 아니라 누구든지 미워하진 않겠다. 그들의 악행을 용서하지도 않겠고 다만 기억해야겠다. 기억하며 함께 살겠다.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 저들이 나를 미워하든 좋아하든 그것은 그들의 감정일 뿐이다. 그들의 인생일 뿐이다.

내가 당당히 콘트롤할 수 있는 건 내 감정이다. 남이 나를 괴롭혀도 괴롭지 않을 권리와 자유만이 내 것이지 않은가. 그 위대한 권리와 자유로 어떤 상황에서도 분동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있음을 누릴 수 있는 건 온전히 내 것이고 내 인생이다. 와우!! 멋진 내 인생!!! 이렇듯 큰 소리 팡팡팡 치고 보니 그들의 악행이라는 것도 좀 우습네. 내 부모를 해한 것도 아니고, 내 자식을 해한 것도 아니다. 나를 인정하고 안 하고 따위, 그야말로 그들의 자유지. 아닌 말로 그들이 인정한다고 내 소설이 잘 되겠어, 그들이 인정 안 한다고 내 기막힌(?) 소설이 쓰레기가 되겠어. 모쪼록 제 꼴리는 대로 살되 자살하지는 말았으면. 이웃들아, 눈만 돌리면 꽃천지다. 사람이라고 징한 사람만 물고 늘어지지 말고 꽃놀이도 해가면서 맘껏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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