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출신 여성 항일투사들
경남 출신 여성 항일투사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5.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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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향토사학자

진주 3.1운동 때 진주기생 6.7명이 논개의 기백을 당당하게 발휘하자면서 남강변을 따라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 피체되어 희생을 치루었다라고 <3.1운동실록>에 기록됐다.


통영시 제 5차 의거는 기생조합의 기생들 이국희. 정홍조 등이 앞장서서 지도했다. ‘금비녀. 금반지를 팔아 광목 4필 반을 구입해 미리 준비한 치마. 저고리 등 소복의 미녀 기생 33명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중앙시장 한복판을 지나 시위하자 장터에 있던 남녀노소가 동참하니 7천 여 명이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통영 2차 의거는 유치원 보모들 문복숙. 김순이 등이 3월 13일 장날을 이용하여 중앙시장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피체되어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의령군 여성단체원 이화경. 이원경. 최숙자 등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행진하다 소학교 교사 강순이 에게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자고 말하자 즉시 동참했다. 의령여성들은 진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마산 의신학교 직원인 김필애. 박순천 등은 비밀회합을 하고 마산 의신학교 여학생 최봉선. 김남준. 이수학. 안음전 등은 결사문을 작성해 최용규 집에서 선언서. 격문. 태극기를 제작해 3월 20일 정오 12시에 일제히 시위를 전개하다 50여 명이 피체되었다.

이금복(1912~2013)여사는 1930년경 부산으로 가서 초장동에 셋방을 얻어 공장에 취업했다. 일제와 그 주구들의 임금착취. 노동착취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자택에서 20여 차례 비밀회합을 가지고 공장 연구회를 조직하고 회원확보와 회비를 거두어 <여공과 더불어>라는 격문을 사방에 배포했다.

이춘근. 정충조 등과 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중 일경에 피체되어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대구지역 노동파업 상황을 격문을 통해 알리다가 일경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고향으로 피신했다.
고향에서 야학교 경영에 협조하다 일경에 피체되었고 진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수년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고 공적비도 건립했다.

전국 시.군마다 신간회가 조직되자 그 자매 단체인 근우회가 조직됐다.
근우회 진주지회는 성석순. 장경현. 한준주. 김정애. 이수애 등 30여 명이 앞장 서서 약 2년간 활동하고 근우회 하동지회는 채소정. 제영순. 조필열. 강정희. 조복금 등 20여 명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경남지역 여성들도 항일투쟁 대열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음이 확실하다. 기념 사업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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