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한일수교 50주년
이순신 장군과 한일수교 50주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6.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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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은 유난히 전쟁과 전투가 많이 일어난 달이다. 가깝게는 서기 1999년 6월15일의 1차 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의 2차 연평해전이 있었고, 1950년에는 6.25동란이 있었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로 양력 5월 23일이므로 6월에 가깝다. 문약하고, 무능했던 선조(宣祖)는 울부짖는 백성들과 수도 한양을 버리고 개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쫓겨 간다. 임금의 수레가 황망하게 평양성으로 쫓겨 들어가는 바로 그날, 5월 7일(음력) 12시경, 조선군은 큰 승리를 거두어 드디어 전세를 뒤바꾸는 첫 단추를 끼웠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첫 승리인 거제도 ‘옥포해전’이다. 끝없는 낭떠러지에서 나라를 구한 ‘옥포해전’ 바로 그날의 상황을 ‘난중일기’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1592년 5월5일에서 5월 28일(음력)까지 ‘난중일기’가 기록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살, 총, 대포가 작열하고 피가 튀고 시신이 널 부러지는 전투 중에도 줄기차게 기록하시던 장군의 ‘난중일기’ 이다. 훗날 1597년 4월 13일, 그토록 사랑하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날도, 그해 10월 14일, 당신을 꼭 닮았다고 늘 뿌듯해 하던 막내아들 ‘면’이 적의 칼날아래 무참하게 죽은 날도, 다음해 11월 18일, 당신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 어김없이 ‘난중일기’를 쓰신 이순신 장군이다. 아마도 장군도 임금의 황급한 몽진과 육지에서의 조선군의 연패 소식, 군사적 능력을 전혀 알 수 없는 왜군과의 첫 전투인지라 일기를 남길 겨를이 없으셨을 것이다. 담대하신 장군께서도 개천 초에는 ‘전투 스트레스’가 심하셨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 된다. 다만 선조에게 올리는 장계 「옥포파왜병장」에 소상하게 기록 되어 있다. 옥포대첩은 ‘세계 4대 해전’으로 알려진 ‘한산대첩(1592년 7월 8일)’으로 이어진다. 세계 4대 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과 기원전 480년 그리스 ‘데미스토클레스 제독’의 ‘살라미스 해전’, 1588년 영국 ‘하워드 제독’의 ‘칼레 해전’, 1805년 영국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이다.

세계 5대 해전을 꼽으라면 학자들은 1905년 5월 27~28일 일본 명치해군의 사령관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가 3배나 많은 무적의 ‘러시아 발틱 함대’를 괴멸시킨 ‘동해 해전’을 꼽는다. 동해 해전의 날은 ‘일본 해군의 기념일’이 되었다. 이 해전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한 일본의 ‘명치 해군’은 훗날 태평양에서 지구최강의 미군해군과도 맞붙을 정도로 군사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막상 ‘도고’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해군사령관은 ‘이순신 장군’이고, 자신은 ‘이순신 장군의 하사관’ 정도의 자격이 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이토록 거룩하고 위대한 첫 승리인 ‘옥포대첩’을 올해의 달력으로 환산하면 6월 22일이다. 그로부터 373년이 지난 1965년 6월 22일은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한국, 일본이 관계를 정상화 한 한일수교 50년이 되는 날이니 격세지감이 크다. 당시 ‘굴욕외교’라는 국민들의 지탄에도 회담의 주역인 김종필 씨는 ‘반일보다 용일을’, 박정희 대통령은 ‘필요하면 원수하고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각오로 임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대쪽 같은 이순신 장군은 포악한 명의 수군제독 ‘진린’을 처음부터 극진히 접대하고 자신의 공을 돌리면서까지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였다. 끝내는 ‘진린’의 마음을 사고 마지막 노량전투까지 함께 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비보를 들은 ‘진린’은 전함위에서 기절하여 쓰러지고, 그의 후손들은 명나라가 망한 뒤 조선으로 망명한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의 허리 굽힘은 비굴함이 아니나 단지, 그 굽힘을 잊지 말고 시간을 벌어 절차탁마, 와신상담의 각오로 참다운 실력을 길러 세상을 성장시켜야 한다. 성장을 통해 홍익 인성이 되어야 아베의 비뚤어진 우경화와 우리에 대한 조롱, 중국의 패권주의, 북한의 협박, 미국과의 올바른 관계도 정립되어 인류가 평화를 구가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의 합일 된 마음과 주도면밀한 준비로 이미 이긴 뒤에 ‘필사즉생’의 각오로 매 전투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으로 ‘메르스 국난’과 ‘경제 난국’을 이겨나가자. 그것이 우리에게 홍익인간의 정신을 전하여 주신 단군왕검께서 신묘년(기원전 2370년) 6월 17일(양력), 이 세상에 태어나신 이유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래 왔듯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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