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다시 보다
잡초를 다시 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6.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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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강아지풀, 까치수염, 개망초, 고추나물, 꽃다지, 꿀풀, 괭이밥, 고마리, 구릿대, 기린초, 노루오줌, 냉이, 달래, 도깨비바늘, 돌나물, 동자꽃, 뚝새풀, 뚱딴지, 들콩, 등골나물, 머위, 며느리배꼽, 메꽃, 무릇, 물레나물, 명아주, 미나리, 미나리아재비, 미나리쟁이, 민들레, 밀나물, 바랭이, 방가지똥, 방동사니, 벼룩나물, 별꽃, 뱀딸기, 뱀무, 뺑쑥, 비름, 사위질빵, 산국, 산괴불주머니, 소루쟁이, 산마, 속새, 솔나물, 산박하, 산쑥, 새모래덩굴, 쑥부쟁이, 씀바귀, 쇠별꽃, 쇠서나물, 산부추, 쇠뜨기, 어성초, 야생당귀, 야생팥, 억새, 엉겅퀴, 여귀, 왕고들빼기, 애기똥풀, 앵초, 오이풀, 원추리, 으아리, 이고들빼기, 익모초, 인동덩굴, 쥐오줌풀, 진득찰, 질경이, 제비꽃, 주름조개풀, 짚신나물, 졸방제비꽃, 지칭개, 털중나리, 톱풀, 투구꽃, 파드득나물, 참나물, 창가시덩굴, 청미래덩굴, 초롱꽃, 피, 하늘말나리, 할미꽃, 향유, 현호색, 등등 …

이런 이름들은 아름다운 꽃과 잎사귀를 갖고 있고, 이 가운데 반쯤은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 풀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마땅히 살 곳이 없다. 잡초라는 이름으로 뽑히거나 제초제(除草劑) 세례를 받아야 한다. 가혹하게도 그런 일이 모든 집과 거리와 공원과 농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풀들이 마음 편히 살려면 단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어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땅을 찾거나 사람에게 야생화(野生花)로 선택되는 길이 그것이다. 야생화로 간택된 풀은 좁은 땅이나마 화단이나 화분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는데, 이때도 자유는 제한적이다. 자신을 선택한 사람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예쁜 꽃을 피워야 하고, 잎사귀는 항상 싱싱해야 한다.

사람들은 톱과 도끼로 나무를 베어 내고 그곳에 집을 짓고 목장이나 논 밭, 혹은 과수원을 만든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가고 사람이 떠나면 그곳에는 메마른 땅만 남는다. 사람들이 살다 떠난 그곳은 야윌 대로 야윈 땅 뿐이다. 사람들이 기르던 식물들은 사람과 함께 떠나 버린다. 벼, 수수, 조, 콩, 배추, 무, 상추, 호박, 가지, 수박, 오이, 당근 등등… 어느 것 하나 다시 볼 수 없다. 그러나 잡초들은 척박(瘠薄)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메마른 땅을 비옥(肥沃)하게 가꾸고 토사유실을 방지시키고 땅 표면을 푸르게 장식한다. 거름과 비료와 농약을 뿌려주어도 잘 자라지 않는 농작물에 비하여 아무런 인위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바람과 비가 가져다주는 얼마 안 되는 식량으로 목숨을 이어 가면서 겸허한 모습으로 땅을 보호하고 되살리는 작업을 남모르게 해 나가지만, 놀랍게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잡초가 없었다면 지구는 벌써 벌거숭이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한 풀, 곧 잡초는 모든 곳에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엄청난 수난을 끝도 없이 겪고 있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잡초를 없애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잡초는 살 곳이 마땅치 않다. 있다면 다음 네 군데 정도이다. 첫째는 산이고, 둘째는 한국의 남북 경계선에 있는 비무장 지대이고, 셋째는 버려진 땅이고, 넷째는 정말 그 숫자가 얼마 안 되지만, 풀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사람의 논밭이나 정원이다.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수렵(狩獵), 채취에서 정착농경(定着農耕)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더 이상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살지 않고 내가 바라는 것을 손수 길러 먹겠다는 뜻이고, 그때부터 지구의 식물은 재배 작물과 잡초라는 두 가지 세계로 나뉘게 되었다. 재배작물이란 인류가 원하는 곡류, 야채류, 과일류, 그리고 원예용과 풀과 나무를 말한다. 그것을 한 곳에서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방식으로 인류는 지구 위에서 크게 번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부터 풀과 벌레와 짐승의 일부를 잡초, 해충(害蟲), 해수(害獸)라고 부르며 그들과 싸움을 벌여 온 것도 사실이다. 농약과 비료라는 이름의 화학병기는 풀이나 벌레에 그치지 않고 인류는 물론 그 모든 것의 바탕인 공기와 물과 땅까지 더럽히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가뭄이 지속되다가 단비가 내려 며칠 만에 텃밭에 나가 보았더니 잡초들이 무성하기에 한 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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