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포정사 보물로 승급하라
영남포정사 보물로 승급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7.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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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향토사학자

진주시 남성동 167-6번지에 소재한 영남포정사는 진주성 공북문으로 들어가 김시민 장군의 동상을 보면서 고개를 들고 서쪽으로 향하면 2층 높은 누각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바로 영남포정사 문루이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 사진을 보면 문루 양편에 돌로 구성된 담장을 볼 수 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100년 전 사진을 보면 지금 현 상태와 거의 같아 진주성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과 같다.

영남포정사 문루는 남이흥 병사(목사)(1576~1627년)가 광해군 10년 서기 1618년에 동쪽 문을 세우고 대변루라고 했는데 망미루라고 호칭케 된다.

1895년 전국이 13도 제도가 폐지되고 23부로 개편될 시기에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 관찰부 소속 선화당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한다.

전국이 13도로 개편되자 망미루가 경남 관찰부의 정문이 되었고 동시에 영남포정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남이흥 장군은 본관 의령. 조선 개국공신 영의정 남재의 후손이다. 부친 남유가 부평부사를 거쳐 남해 노량 해전에서 전사하자 글 공부를 제치고 무과에 급제해 1617년 42세 때 진주로 부임해 여러 공적을 이루었다.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적이 있고 1627년 후금이 침입해 안주성에서 맞아 싸우다 순국해 충장공 시호가 내리고 의춘부원군에 추증된 분이다. 충남 당진군은 해마다 문화제(금년 27회)를 개최할 정도로 훌륭한 분이다. 진주는 누군지 아는 이가 드물고 기리는 행사도 없다.

남이흥 장군이 건립한 영남포정사 문루는 정면 3칸 2층 누각 형식으로 겹처마에 팔작 지붕이다.

방형의 초석위에 돌기둥이며 그 위에 마루를 깔고 상층을 이루었는데 주변을 보면 계자 남간을 친 모습이다.

영남포정사 문루는 1983년 8월 6일 경남도 문화재 자료 3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정식 문화재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문화재 자료보다 한 등급 높은 지방 유형문화재부터 문화재 범주에 든다.

옛 도청 정당인 선화당은 사라졌지만 그 앞에 존속하는 영남포정사 만이라도 보물로 승급할 이유가 있다.

서부 청사와 옛 도청은 별개가 아니라 한 몸이고 한 그룹이기 때문에 당장 문화재 등급을 올려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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