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
내 사랑 내 곁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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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경찰서 마다 “경찰이 달라지겠습니다”라고 아무리 크게 써서 붙여놔도 일단 경찰서로부터 날아온 우편물을 받으면 우선 가슴이 철렁하며 긴장부터 하게 된다. 비록 그 안에 초대장이 들어 있을 지라도. 이는 경찰 가족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는 일반적 정서일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전 보낸 사람이 경찰서장인 봉투 하나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무심코 그냥 그 봉투를 꺼내서 뜯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구가 놀라며 한마디 했다. 왜 하나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느냐고.
“내가 음주운전 했어? 뺑소니 했어? 놀래긴 왜 놀래?”

“자, 잘 봐라! 초청장이다”하며 큰소리치는 그 순간, 나도 녹색어머니회장이 아니었다면 저게 바로 내 모습인데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이렇게 초대받은 제66주년 경찰의 날 행사여서 그랬을까. 그런 자리에 참석을 하여 제복을 입은 분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려니 대한사람 대한으로서의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마치 초등학교 입학식 때 처음 들어본 풍금반주의 애국가 전율과도 같았다.

경찰복 베스트드레서를 선발한 식전행사나 1부 2부의 다양한 행사들도 의미 있었지만 한 전경이 나와 앵콜송으로 부른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뇌리에 큰 울림으로 새겨졌다. 특히 지그시 두 눈을 내리 감은 채 목에 푸른 핏대를 세우며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어나면 비틀거릴 내애가 아안길 곳은 어어디에-” 라는 대목에서는 내 눈가가 젖어있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당한 이름 없는 이들로부터 6·25학도병이며 천안함에서 희생된 그 젊은 영혼들까지 왜 이 청년의 노래 속으로 파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약속했던 그대만은 올 줄 모르고”라는 대목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지금 2.30대라면 이 약속의 대상이 그저 사랑하는 연인의 이미지로 다가 왔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이 하며 장소도 장소거니와 마치 내 아들이 부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이를 먹고 보니 이런 감상과 해석도 가능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아직 초딩인 우리 아들이 몇 년 전부터 제 군대 갈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쭉 봐와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은 해병대 기수열외 왕따 사건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부대 내에서 휴가 나온 집에서 군인과 전의경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아직까지도 날아들곤 한다.  그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웃으며 집을 나선 아들을 주검으로 대면해야하는 부모의 그 천형(天刑)을!  단장(斷腸)의 그 아픔이 일제치하라고 한국전쟁 중이라고 오늘날과 그 강도가 한 치인들 달랐겠는가!  

식이 끝난 후 다과회 자리에서 한 의경에게 복무 환경이 어떠냐고 살짝 물어봤다. 그는 여기서는 아무리 선임병이라도 후임병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경찰서장도 자기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그가 자랑 한 것 중에 퍽 인상적인 것이 서장이 출장 중 회의 시간이 길어지면 운전병에게 문자를 보내 그에게 자유롭게 그 시간을 활용하도록 배려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여도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없이는 상관으로서 실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행동이 아니다.

우리나라 공직자들과 상급자들 중에 이런 의식으로 부하직원을 대하고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요즘도 민원실이나 상담실에 가면 상대방의 옷차림새나 말투 봐가면서 우선 반발부터 까고 나오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이름 앞에 열광을 하고 있다. 그분의 인간성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가 군의관으로 있을 때 후임병에게 반발을 못해서 고심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 그였기에 우리가 그의 백신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백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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