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쌈밥
멸치 쌈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0.3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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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IT교육 컨설턴트
일요일 저녁 맛 좋기로 소문난 마산 어시장 근처의 멸치 쌈밥집을 들렀다. 멸치 쌈밥은 마산으로 이사 온 후 필자가 즐기는 음식 중에 하나다.

멸치쌈밥은 남해 지방의 대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멸치는 신선한 생멸치가 주재료이다. 그런데 멸치는 거제 인근의 바다, 부산 마산 진해 일대에서 봄에 많이 잡힌다. 높은 곳에 올라 바다를 보면 거제 부산 진해 남해 마산은 지척에 바다가 인접해 있다.

그런데 멸치란 녀석들이 동네 가려가며 살겠는가. 바다에 학군이 좋은 데가 있을 리도 없고 장사하기 좋은 동네가 따로 있을 리도 없다. 또 멸치가 무슨 장사며 학교며 돈에 관심이 있겠는가. 그저 춥지 않고 먹을 것 많으면 마음 붙여 사는 거지. 어찌 됐던 부산에서 거제에 이르는 바다에는 멸치가 많이 잡힌다. 또 갓 잡아 올린 멸치를 재료로 한 멸치쌈밥을 즐긴다.

멸치 쌈밥은 신선한 멸치의 내장을 제거하고 된장을 넣고 자작하게 끊인다. 매운 고추가 있으면 넣고 없으면 고춧가루를 넣는다. 그게 전부다. 여기에다 야채가 있다면 적당히 넣으면 그만이다. 무슨 요리가 그러냐고 되묻겠지만 이것이 멸치쌈밥이다. 쌈 재료는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상추가 있으면 상추를 먹고 미역이 있으면 미역을, 양배추가 있으면 그것을 먹으라고 권하고 싶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것이 멸치쌈밥의 포용력이다.

멸치의 연한 살에서 우러나오는 육즙 맛은 어떤 국물맛보다 진하다. 여기에다 매콤한 고추며 된장 맛까지 더했으니 무엇이 그 맛을 가릴 수 있겠는가.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는 바다와 같은 묵직한 맛이다.
필자는 생활이 무료해지고 지칠 때 바닷가에 자리 잡은 멸치 쌈밥집으로 간다. 후끈한 찌게를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어부의 호통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금방 잡은 멸치로 급하게 끊여 허기를 잊고 일하는 어부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부산한 노동의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뭍으로 무리지어 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진 거물 질에 살점이 찢기고
어부의 반복 되는 후렴구에 실려
바다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들은 바다의 맛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바다였다.

어느 무명 시인이 멸치를 노래한 시 구절이다. 눈물겹다. 나이가 들어가고 내 인생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들 때마다 가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무슨 맛이었느냐. 이 세상에 무슨 맛을 남겼느냐. 필자는 사는 것이 힘들 때 가끔 멸치 쌈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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