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정 김홍권 의정원 의원
상해 임정 김홍권 의정원 의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8.1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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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향토사학자

김홍권(金弘權)선생은 상해 임시정부 재무위원이며 의정원(국회역할)의원으로 활약한 보기 드문 항일투사로 추앙받아야 할 분이다.


김홍권 선생은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서 태어난 분으로 수년전 하동군과 집안 어른들의 지원을 받아 향리 도로변에 공적비가 건립된 분이다.

그의 공적이 실린 문헌은 문일문의 <한국독립운동사>에 처음 실리고 연이어 김승학의 <독립운동사>에도 실렸다.

최근에는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제 5권 324면. 538면. <독립운동사>제4권 162면. 199면. 420면에 실리고 하동군지. 양보면지에 실려 자세히 보면 엄청난 공적에 감탄사가 나온다.

1892년 1월 25일생이고 진주과학기술대 전신인 진주농업학교 제 2회 졸업생(1913년)이란 사실에서 실력과 집안 경제력을 읽을 수 있다.

항일청년학생들의 조직인 대동청년단원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고 학교를 졸업하자 곧 일본 유학을 떠나 일본 대학에서 수업중 명치대학 재학중인 산청출신 유경환을 만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걱정하고 토론하다가 함께 상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를 위해 일하게 된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제안한 신석우를 지지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게 하고 임시정부 재무위원이란 중책을 맡아 초창기 임정의 재정을 맡아 큰 역할을 담당했다.

향리 하동군에 소재한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논. 밭을 모두 매도해 그 돈을 임시정부를 위해 사용하신 분이다.

초창기 상해 정부 임시 의정원 의원으로 상해 임정의 기반을 다지는 등 그의 활약상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난다.

그러나 상해. 만주. 국내로 오가며 노심초사 오직 민족과 조국을 걱정하며 열정적으로 뛰다 1937년 1월 진주의료원에 입원해 치료중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한창 일할 46세에 세상을 떠나 향리 주민들과 친구들이 애석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부산에 사는 친구 김범부(뒤에 동래 국회의원)는 1939년 1월 하동군 양보면 도로변에 기념비를 세워 애석한 심정을 표현했다.

김홍권 선생의 공적이 너무 크기 때문에 196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12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필자가 자료를 제공한 <하동군지>에 공적이 실리고 <항일투사열전>등에도 공적이 실렸다.
3명의 손녀 김성실(강변약국 약사)김성애(경수중학교 교사)김성숙(광복회 서부경남 지회장)등이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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