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관한 단상
권력에 관한 단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8.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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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한때 우리의 지성계를 장악했던 미셸 푸코의 철학에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권력’에 관한 이론이다. 극도로 축약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이 인간세상에는 거미줄처럼 촘촘한 권력의 그물망이 쳐져 있어 인간행위의 거의 모든 것이 권력관계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했던 예전의 그 정치권력(그의 표현으로는 ‘죽음의 권력’)만이 권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살기 위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모종의 권력(즉 힘)에 의해 움직여진다.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참으로 예리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법이나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연구대로 감옥도 병원도 성도 다 권력이다. 돈도 권력이고 문화도 지식도 또한 권력이다. 우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다 권력이라면 가족도 권력이고 TV도 신문도 인터넷도 폰도 역시 권력이다. 싸이도 권력이고 소녀시대도 김연아도 그리고 요즘 같으면 대한이 민국이 만세도 물론 권력이다. 드라마 같은 것은 더 막강한 권력이다. 그 자체가 우리를 그들 앞으로 불러 세우는 명령이니까.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도 아이의 투정도 또한 권력이다.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니까. 그러니 권력의 그물망이라는 푸코의 표현은 그야말로 확실한 진리의 일면이 아닐 수 없다.


좀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이런 철학적 통찰은 사실 2천 3백여 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이미 존재했었다. ‘존재의 원인’, ‘운동의 원인’으로 그가 제시한 이른바 형상-질료-동력-목적이 넓은 의미로 보자면 다 권력인 것이다. 어떤 ‘움직임’이라는 결과와 그 움직임을 야기하는 원인의 관계가 그만큼 보편적 진리라는 하나의 방증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에도 역시 부침이 있는 것 같다. ‘권불10년’이라는 말은 비단 정치권력-죽음의 권력뿐만 아니라 이런 보편권력-추상권력-삶의 권력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른바 ‘교양’이나 ‘지성’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요즘 말하는 소위 인문학이라는 것이, 즉 문학-사학-철학이 그 핵심에 있었다. 한 시절 전만 하더라도 이런 것들은 분명히 일종의 권력이었다. 사람들을, 특히 젊은 청년들을 그것으로 향하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당위인 듯 그런 종류의 책을 읽었고 그런 종류의 강의와 강연에 열광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주제에 관한 토론도 살아 있었다. 나만 하더라도 1970년대의 대학시절에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느라 밤을 꼬박 지새운 적이 있었고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의 헌책방을 이 잡듯이 뒤진 적이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그보다 더 옛날, 니시다 키타로의 {선의 세계}를 사기 위해 출간 전날부터 젊은이들이 서점 앞에 줄을 섰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치 지금의 젊은이들이 새 모델의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때 그 시절의 그 책이나 그 강의, 그 강연들보다 훨씬 더 우수한 것들이 지금 결코 적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이미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강의실에서도 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초라하게 한쪽 구석으로 내몰려 먼지를 쓰고 있다. 권좌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 대신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도처에서 눈에 띄는 것들은 대부분 ‘수’다. 숫자는 지금 자본이라는 군대를 거느리며 온 세상을 지배한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좌우하던 이른바 3대 욕망, 부, 지위, 명성의 지향도 지금은 거의 돈으로 일원화된다. 권력도 명예도 이미 돈의 휘하로 들어간 지 오래다. 물론 그리스도나 부처가 아니고서야 지금 누가 감히 저 자본의 권위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유일의 독재 권력이 된다면 그것은 역시 문제다.

우리는 교양과 지성이 연출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아직도 아련한 마음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길은 없는 것일까. 그 인간적인, 품격 있는 권력의 부활을 위해 동지를 좀 규합해봐야겠다. 정치권력의 지원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위나라로 갔던 공자와 시라쿠사이로 갔던 플라톤의 심정도 아마 지금의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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