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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시마호 침몰사건을 아는가?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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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3  15: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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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해방 일주일 뒤인 8월 22일 오후 10시경 날씨는 맑았다. 일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의 오미나토항에서 일본 해군 특설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출항했다. 이는 귀국선 제 1호로써 일제시대 강제 연행되어 힘든 노역에 시달렸던 1만명 이상의 조선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우키시마호는 당초 목적지인 부산항을 가던 길에서 이탈하여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가 2틀 뒤인 24일 오후 5시경, 마이즈루만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원인 모를 대폭발을 일으키며 가라앉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우키시마호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촉뢰설’과 ‘폭침설’등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본정부는 사건진상 조사는 물론 일체의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우키시마호는(4730톤, 108m) 오사카 상선 소속의 화물선으로 태평양 항로나 오키나와 항로를 주로 운항하던 배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인 1941년 9월 3일 군에 징발되어 대포 따위를 싣고 소위 포함대로서 장비를 갖춘 감시선으로 이용되었다. 군함으로서의 소속은 요코스카 진수부였으나 침몰 당시 특설운송선으로서 오미나토 경비부에 소속되어 홋카이도를 비롯한 북방해역에서 사람이나 군수물자의 수송을 맡고 있었다. 주로 강제징용에 동원된 우리 노동자들의 수송을 전담하였다.

1945년 8월 24일, 일본의 마이즈루 항에 입항 하려던 우키시마호는 그렇게 엄청난 비극을 남기고 사라져갔다. 이날 침몰 사건으로 일본의 공식 기록은 한국인 사망자 524명, 일본 해군 26명으로 나타냈으나 이 기록에 대해선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당시 선박의 수속절차가 날림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아 최소 한국인 사망자가 2000명은 넘지 않냐 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구체적인 피해와 피해인명 그리고 후속대책은 없었다. 1939년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위해 군국주의의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비대해진 군부는 한반도를 병참화시키기로 결정하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한 강제징용에 앞장섰다.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의거 ‘국민징용령’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한국인 동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회유, 강압, 고문에 의한 것으로서 이들 중 상당수는 일본의 본토로 들어가 강제 징용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 말엽 일본 사회는 패전의 두려움으로 집단적 히스테리를 불러왔다. 특히 오사카, 나카사키에 떨어진 원폭은 우리가 이러다가 다 죽지 않을까하는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져든 것이다. 이를 희석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한국인들에 대해 소련의 스파이, 사회 불안정 요소로 보고 집단 학살을 이곳 저곳에서 벌여나갔다. 미시스카 학살사건과 미즈호 학살사건 역시 이 때의 일이다. 패전 이후 한국인들을 우키시마호로 몰아 침몰시킨 것은 그러한 불안감들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들은 그렇게 인간이기를 안팎으로 거부하면서도 지나간 죄상을 덮기에 급급하였던 것이고 지금도 독도 넘나보기 등 우리에게 파렴치한 행위는 계속되고 있고 나아가 그들에게 동조하게끔 하는 신친일인사들을 우리 땅에서 키울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키시마호의 침몰요인으로 보이는 촉뢰설은 일본군 및 미국군이 전쟁에 대비한 해상 지뢰가 터져 오키시마호가 침몰했다는 것이지만 이는 일본의 책임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로서 해석되고 9년 후 인양한 배의 폭발 지점이 촉뢰설에 의한 ‘밖에서 안으로’ 가 아닌 ‘안에 밖으로’ 였으므로 선박 안에 있는 일본 해군에 의한 자폭설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게다가 사건 발발 직전 일본 군인들은 이미 소형 보트를 통해 우키시마호를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증언으로 볼 때, 사실상 일본 해군이 저지른 만행인 것이다. 일본 수뇌부는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수중에서 고향을 보고 눈을 감으신 선열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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