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고을 산청 잘 그린 지리산약초학교
약초고을 산청 잘 그린 지리산약초학교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1.10.31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약초학교를 찾아서

지리산약초학교가 올해 2기를 마지막으로 내년을 기약하게 된다. 지리산 약초학교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산청이 약초의 고장임을 잘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약초 산청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지금까지 일반에게 숨겨져 있던 지리산 약초꾼의 육성이 그대로 전달됐고 지리산 곳곳에 숨겨져 있던 약초관련 민간요법들도 공개됐다. 지리산 약초학교는 또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 엑스포를 위한 점검의 의미도 함께 했다. 엑스포가 성공하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점검한 셈이다. 지리산약초학교를 통해 약초고을 산청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2기 동안 진행된 지리산약초학교의 주요 장면들을 모아 보았다.

▲ 박사문의 신비한 지리산 민간요법
박사문의 신비한 지리산 민간요법
지리산약초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박사문(64) 선생의 지리산 민간요법 강의이다. 무엇을 물어도 막힘이 없는 그의 강의에 학생들은 넋을 잃는다. 40년 약초꾼으로서의 경험과 현장 체험은 듣는 학생들로 하여금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그의 민간요법 체험을 통해 고질병을 나은 학생 가족도 있다. 약초학교 1기의 모 학생 아내는 6년간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다녀보고 한의원이라는 한의원은 다 다녀보았다. 그런데 낫지 않았다. 박사문 선생을 만나 민간요법을 권유받고는 단 5일 만에 나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박사문(64)선생은 14살 때부터 약초를 캐러 다녔다. 40년간 지리산에서 약초를 캔 것이다. 금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명문고등학교이었던 진주고등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동네에서 천재가 났다는 소리를 들어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가슴속에 좌절과 분노가 밀려와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무작정 지리산으로 갔다. 약초를 캐러 간 것이 아니라 울분을 삭이러 산에 올랐다. 그것이 약초와의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약초를 캐다 팔았다. 그러다가 직접 약초 중간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약초 중간거래를 위해 전국을 돌아 다녔고 이때 약초에 대한 눈을 떴다. 약초를 취급하면서 동네 어른들의 민간요법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웬지 그것이 기억에 잘 남았다. 굳이 민간요법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민간요법을 이야기해 주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가슴이 뿌듯했다.
“민간요법은 민간에 전승돼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합니다. 쉽게 말하면 임상실험을 통과한 것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잘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체험했을 때 잘 듣지 않으면 그것이 전파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민간요법은 그 어떤 것보다 임상실험의 경험이 풍부한 것들입니다.”
박사문 선생은 민간요법에 대해 동의보감보다 더 임상실험에 철저한 검증을 거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병이 낫지 않으면 전해질 리가 없다. 병이 나으니 전해지는 것이지. 박 선생은 이제 민간요법을 기억하고 있는 어른들이 다들 연로하셔서 이대로 두면 민간요법은 다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 같다. 누군가는 나서서 어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후세에 전해질 것인데 이게 큰 일이라는 게 박 선생의 걱정이다.

▲ 약초의 보고 김승주의 지리산 자연건강학교
약초의 보고 김승주의 지리산 자연건강학교
약초지킴이 김승주 선생의 지리산 건강학교도 인기있는 과정이다. 지리산 1000여종의 약초가운데 약 500여종을 모아 놓은 지리산 자연건강학교는 그 자체로 훌륭한 교육장이다. 건강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들은 수많은 약초의 존재에 압도당한다. 건강학교를 한바퀴 둘러보면서 느끼는 학생들의 경외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약초를 재배하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를 받는 공원도 아니고 단지 약초표본을 모아서 키우고 있는 건강학교는 돈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도 되지 않는 약초 수집에 평생을 바친 김승주 선생을 보면서 지리산약초학교 학생들은 지리산약초의 위대함을 느낀다.
“앞으로 약초는 약으로 먹기 보다는 음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병이 났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병이 나기 전에 건강을 위해 약초를 일상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약초에 대한 김 선생의 지론이다. 김선생은 또 좋은 약초는 심심산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늘 보는 담쟁이 덩굴이 훌륭한 약초입니다. 주로 피를 맑게하는 담쟁이 덩굴은 그 외에도 강장제나 소염작용등으로 그 자체로 훌륭한 약초입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약초가 전문가들의 영역이 아니라 이제 일반인들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김 선생은 약초는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관심만 가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주변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너무 좋은 약초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 선생은 앞으로 약초 산업은 약재로서 보다는 기능식품으로 시장성이 더 크다고 강조하고는 누구든지 기능성 식품으로서 약초에 인생을 걸면 큰 업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놀라운 약선음식의 세계 알천농원
놀라운 약선음식의 세계 알천농원
와!!! 너무 맛있겠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알천농원에 도착한 학생들은 탄성을 내 질렀다. 차려진 약선 음식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 것. 알천농원은 요리전문가 이혜령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약선 음식 전문 농원이다. 점심때 뷔페를 위해 준비한 약초음식만 무려 20가지가 넘는다. 약초나 채소로만 이정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다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준비된 음식 하나하나를 설명을 들으면서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혜령 대표는 자신이 준비한 음식 하나하나의 의미와 약성등을 설명해 준다. “자리공 나물입니다. 장녹이라고도 하는 데 무릅관절에 좋은 약초입니다.” 장녹이 나물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학생들은 경탄해 마지 않는다. 각종 짱아찌도 볼거리 중의 하나. 곳감으로 만든 짱아찌도 학생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메뉴. 제대로 상품화 되지 못하는 곳감을 가져와서 잘라서 고추장과 각종 소스를 첨가해 장아찌를 만들면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곳감 짱아찌가 된다. 실제 곳감 짱아찌 만들기 체험을 해 본 학생들은 다른 짱아찌와 달리 달콤한 맛을 내는 곳감 짱아찌를 보고는 전국적인 상품이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몸에 좋은 약초로 만든 푸짐한 상을 받는 알천농원의 약선음식 기행도 지리산약초학교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알천농원은 4형제가 모두 귀농을 해 만든 농원이다. 처음 이혜령씨 부부가 귀농을 했고 재미와 의미가 있자 동생들이 하나둘 합쳐져 지금은 4형제가 모두 귀농을 했다. 막내만 아직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4형제가 오순도순 알천농원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것. 성공한 귀농을 통해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자신도 늦지 않게 귀농을 했으면 하는 다짐을 새로이 하기도 한다.

▲ 동심으로 돌아가는 별아띠 별보기 체험
동심으로 돌아가는 별아띠 별보기 체험
별아띠 천문대에서 이루어지는 별보기 체험은 어른들에게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김도현 별아띠 천문대 대표에 의해 진행되는 별보기 체험은 아득한 어린시절 누나와 함께 하늘의 별을 세든 그 시간으로 인도한다. 가을하늘에서 빛나는 카시오피아자리, 북극성, 북두칠성 큰 곰자리등을 찾아 하늘을 보는 일은 오랜만에 자신의 무거운 삶을 잊는 자리이다.
생태마을 간디녹색체험마을에서의 수업은 요즈음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생태화장실, 불편한 잠자리등으로 포기하자고 여러번 학교측에서 설득했지만 학생들은 굳이 이 수업을 진행하자고 아우성이었다. 불편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게 학생들의 희망이었다. 실제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간디녹색체험마을은 일반인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현장이다. 이 마을은 약 20가구가 사는데 모두다 마을의 생태 규약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불고기를 구울 수도 없고 술을 먹을 수도 없다. 마을에는 보안등이나 가로등이 없으며 따라서 밤이 되면 깜깜한 암흑천지가 된다. 별보기 체험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보안등, 가로등이 없어서이다. 또한 화장실은 집안에 두지를 못한다. 집 밖에 있으니 지금까지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또 대변은 부식토를 뿌려서 부식시켜서 다시 퇴비로 사용한다.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화장실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20가구의 사람들은 공무원이거나 귀농한 사람들이다. 귀농한 사람들은 주로 유기농 닭을 치거나 농사일을 하면서 지낸다. 대안학교인 간디중학교에서 선생을 하거나 집필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김대표의 말이다. 김대표 자신도 별아띠 천문대를 운영하면서 대안의 삶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는 한편, 간디중학교 교사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삶을 살라고 하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제 대안의 삶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게 학생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불편한 잠자리와 식사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라고 말했다.

▲ 약초로 빵 만들기 민들레학교
약초로 빵 만들기 민들레학교
민들레 학교에서 진행된 약초로 빵 만들기도 재미있는 교육과정이다. 민들레학교의 제빵사에 의해 진행되는 약초로 빵 만들기는 약초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깨는 과정이기도 했다. 약초하면 맛이 없고 빵을 만들어 놓으면 거무티티한 것이 ‘약이니까 먹지 누가 먹겠는가’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민들레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약초 빵은 일반의 그런 편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예쁘고 깜찍할 뿐 아니라 빵이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초로 만든 쿠키는 선물용으로 너무 딱이예요.”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약초 빵에 몰입해 갔다.
1시간동안 진행되는 약초로 쿠키 만드는 체험에서 1기 윤의준 학생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즐겁게 체험에 임했다고 말고는 “왜 우리가 약초로 빵을 만들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참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쿠키와 다양한 빵을 만들어 본 학생들은 앞으로 굳이 빵을 먹는다면 약초빵을 먹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란 반응들이었다.
민들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김인수 교장은 기독교의 목사로 대안의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다. 오래전에 갈전에 들어와 민들레공동체와 민들레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약초빵을 통해 친환경적인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다.

▲ 고로쇠의 왕 청산임업농장 박행규 대표
고로쇠의 왕, 신지식인 1호 청산임업농장 박행규 대표
“고로쇠로 둘러 쌓인 20만평의 농장을 보는 것은 경이 그 자체입니다. 어떻게 2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청산임업농장을 체험하고 나온 학생의 말이다. 말로만 듣던 고로쇠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청산임업농장 수업 또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이다. “고로쇠는 단위 면적당 수입이 감, 사과등 과실 농업에 비해 3배 이상이나 됩니다. 일 년에 한번 물을 수확하게 되는 데 비료나 농약비용이 들지 않고 인건비도 훨씬 저렴하게 듭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물을 받아서 판매하기 때문에 과일처럼 가꾸는 노동이 필요 없다. 그리고 고로쇠 물을 받는 시기는 2월로 농한기이기 때문에 인력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농번기처럼 인부를 구하지 못해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자동화를 통해 고로쇠 물이 자동적으로 받히는 장치를 다 마련한 박 대표는 한번 심어놓으면 별로 들어갈 게 없는 게 고로쇠 농사라고 강조했다.
고로쇠가 유망한 소득작물이라는 데 학생들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며 기절을 하고 만다. 농장의 박행규 대표의 입담 좋은 진행도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로쇠를 재배하기 위해 17개국을 돌아본 그의 실패담과 마침내 찾은 우산고로쇠(울릉도 고로쇠)의 이야기는 듣는 학생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수업이다.
“고로쇠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다녔으나 결국은 우리 것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결국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아니라 철학자와 같은 박행규 대표의 말에 모두들 머리를 끄떡였다.  청산임업농장은 산의 단위면적당 수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고로쇠뿐 아니라 고로쇠를 심은 자리에 산양삼을 심어서 소득을 배가 시키고 있다. 산삼 뿐 아니라 은어리, 고사리, 곰치, 곤드레등 산나물도 적지 않은 수입원이 된다.
우리나라 임업문야 신지식인 1호이기도 한 박 대표는 97년 IMF가 일어났을 때 진주에서 하던 계란장사가 망해 산으로 들어온 케이스이다. 지금은 수백억의 자산가가 된 박 대표는 “임업은 앞으로도 가능성이 무한한 분야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신의 노후를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임업에 대한 박 대표의 칭송은 끝이 없었다.

▲ 이재근 산청군수와의 대화
산청으로 오세요. 이재근 산청군수와의 대화
“산청으로 오세요. 산청에 땅을 사면 부자가 됩니다.” 이재근 산청군수와의 대화시간은 산청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교육시간이다. 어영부영 하다가 군수가 됐다는 이 군수의 입담에 학생들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처음 산청군수가 됐을 때 제가 한 말이 여러분의 재산을 늘려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다는 이 군수는 그때는 군민들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제 조금씩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환경 관광지역의 메카로 산청이 떠오르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땅 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또 산청에서 수확되는 농산물의 가격이 전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는 등 점차 자신의 구상이 실현돼 가고 있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이 군수는 “앞으로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놓여 지면 산청은 보다 더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산청에 땅을 사는 게 좋을 것이라는 농을 던졌다.
학생들 역시 진지했다. “산청이 지리산을 배경으로 많이 홍보됐지만 아직은 군민들의 마인드가 세련되지 못했다. 이래가지고서는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한계가 많다. 또 상품의 내용이 좋아도 포장 등이 아직 시골스럽다. 이것을 고치지 않는  한 산청의 농산물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들이 이어졌다.
한 학생은 산청의 땅을 10만평만 임대해 주면 자기가 여기에 약초를 심고 1000마리의 흑염소를 심겠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학생들의 진지한 지적에는 이 군수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여러분들이 나서서 그런 것들을 발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같은 엘리트들이 산청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자체가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이군수와의 간담회는 함께 지리산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어 가자는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지리산의 약초를 키워드로 하여 세계적인 고장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이재근 산청군수와의 대화는 끝이 날 줄 몰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