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질투
시기질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0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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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옛말에 사람이 질투를 하면 독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일어난 원인도 시기 질투였다. 카인이라는 형이 아벨이라는 동생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자기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 데 앙심을 품고 동생을 죽이는 이야기다. 게다가 얼마나 원한을 품었으면 뒤에서 동생을 돌로 머리를 쳐서 죽여버렸다고 전해진다. 시기질투 한번 잘못해서 자기는 살인자가 되어 몇 천년이 지나도록 인구에 회자되지, 동생은 비참하게 죽었지, 그들의 아버지는 또한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느냔 말이지. 참으로 사악한 시기질투, 이를 어째야 될까?


두 아들의 어머니는 두 다리가 멀쩡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절름발이로 살았다. 한 아들은 나막신 장사를 했고 한 아들은 짚신 장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한 아들이 짚신이 최고라며 짚신 한 켤레를 어머니에게 선물했겠다. 또 다른 아들이 세상에서 신이라면 나막신이 최고라며 그 어머니에게 나막신을 선물했겠다. 그러니 어머니가 나막신을 신으면 짚신 준 아들이 삐져서 질투를 하고 짚신을 신으면 나막신 준 아들이 서운해 질투를 했을 것이다. 이에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한 쪽은 나막신을 신고 다른 쪽 발엔 짚신을 신고 평생 절뚝절뚝 다녔다는 얘긴데 기가 찰 밖에.

콩쥐 팥쥐 이야기와 신데렐라 이야기는 말해 무엇하겠냐만은 시기 질투 이야기를 하면서 그 여인들을 빼면 그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지 않을까. 암튼 이 여인들도 질투로 쪽을 파고 망쪼가 든다. 못 생긴 팥쥐 엄마가 재혼을 해서 들어왔더니 콩쥐라는 아주 예쁘고 착한 아이가 턱 하고 버티고 있었으니 얼마나 속이 뒤집어졌을까, 안 봐도 뻑이다. 무간지옥에 떨어질 때까지 시기질투를 멈추지 못했으니 안쓰럽다. 신데렐라의 두 언니들과 새 엄마도 마찬가지고. 엔간들 하지 않고 망할 때까지 난리인지, 역시 안쓰럽고.

조선시대 저 구중궁궐 속의 빈이네 비네 하는 내로라하는 여자들 역시 얼마나 왕을 가운데 두고 그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시기와 암투를 일삼았던지. 뻑하면 저주를 하고 방법을 쓰고 이 여자는 저 여자의 아들을 죽이고 저 여자는 또 누구의 씨를 말리고....... . 왕자들은 또 어땠는가 누가 왕이 되면 안 되니 되니 해서 또 죽이고 죽는다. 오죽하면 어느 날 봤더니 왕자가 씨가 말라 왕을 세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찾고 찾아봤더니 강화도 두메산골에 살고 있는 왕족을 겨우 한 사람 찾아 세운 사람이 철종이였지 않은가. 이 또한 시기질투에서 비롯된 권력암투 아닐까?

대학 때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모 출판사 영업부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는데 아주 영업력이 탁월한 두 선배가 있었다. 한 선배가 사장에게 가불을 부탁해서 가불을 했다. 그랬더니 다른 선배가 가불 신청을 당장 했다. 사장이 금방 돈을 딱딱 긁어서 먼저 한 사람에게 줘서 못해준다고 했다. 그러자 이 선배가 휴게실에 와서 ‘어떤 년은 해주고 어떤 년은 안 해주냐’면서 그야말로 게거품을 무는 걸 봤다. 지금도 그날의 추악한 게거품의 표정이 생생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 당시 선배는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상태였고 또 다른 선배는 나중에 자살했다.

아들과 딸이 있는데 아들이 먼저 태어났으니 아무래도 아들에게 의사를 묻는 게 습관이 됐다. 예컨대 딸과 아들이 함께 있는데도 '아들아, 뭐 먹을래, 뭐해주까 하고 무심코 물으면 아들은 라면요, 하고 또 무심코 대답한다. 이에 옆에 있던 딸이 나한텐 왜 안 물어봐? 꼭 오빠에게만 먼저 물어본다니까? 그래서 내가 또 딸아 넌 뭐 먹을래 하면 자기는 김치볶음밥이라네. 그러면 나는 졸지에 한 솥엔 라면 한 솥엔 김치볶음밥을 하는데 손은 두 개인데 네 개로 보일 정도로 다다다 움직여 두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해?? 무슨 이른 수가 있느냔 말이지, 참나!! 크크, 그런다고 내가 두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지. 두 사람이 그 따위로 나오면 나는 야, 통일해! 딱 엄포를 놓아 노동을 최소화하는 거지. 이제 둘 다 성장했으니 지들이 알아서 해먹지만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긴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시기질투는 인간의 한 속성이지 싶다. 속성이라고 속수무책 그 싸가지 없는 속성에 마냥 휘둘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전부터 교육을 해왔다. 문제는 여기에 있지 싶다. 우리는 의무 교육 9년을 포함해서 제도권 교육만 거의 20년을 한다. 모두 내 밖의 교육이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같은 속성을 내 밖에 있는 교육으로 해결될 거라고 믿으면 백발백중 속성에게 지고 만다. 내 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것은 나만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내 스스로 창조주가 되어서 온 힘을 집중해서 살릴 건 살리고 죽일 건 죽여서 내게 주어진 귀한 인생은 행복하게 장식해야 한다. 오직 나만이 그 일을 창출할 수 있다, 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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