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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강우규의거일김진환/창원국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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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03  14: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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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서울 여의도에 내려가 일을 보고 다시 고향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서울역에서 고속철을 타려고 옛 역사앞을 지날 때이다. 내 키 두배정도 될까 검은 한복을 입은 수염 긴 어른이 나를 막아선다. “이놈아 너도 철이 들었으면 인사라도 하고 가거라.” 나는 정면으로 그 분을 올려보고 고개를 숙였다. 바로 왈우 강우규 어른이시다. 어르신은 국권을 되찾고자 노인동맹단을 결성하여 독립군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취지로 동맹단을 결성한다.
 
“단군 신조께서 대동천지 금수강산을 우리 종족의 생활기지로 개척하시어 예의 문물을 만들어 주신 이래로 자자손손 계승되어온 4천 3백여 년의 장엄 찬란한 역사가 섬나라 종족에게 강탈 당하여 삼천리 강역은 저들의 감옥이 되고 2천만 형제는 저들의 노예가 되었으니 육체의 생명은 저들의 도마 위의 고기가 되어 있고 농상의 산업들은 저들의 주머니로 돌아가 위험한 지경에 처했으니 고통은 끝이 없다. …중략… 만약 우리가 조국의 독립을 회복하여서 우리 자손으로 하여금 독립군인이 되게 할 수 없다면 설사 우리가 전택과 금전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학문과 기술을 자손에게 물려준다 하더라도 다른 민족의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우리의 죄악을 씻고 원한을 풀기 위하여 노인동맹단을 조직한다.”

이런 결의문은 당시 독립 운동가들을 상당히 고무시킨다. 3.1일 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되어 일제가 잔뜩 긴장되어 있을 때인1919년 8월, 조선에 새 총독이 부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정부는 마침내 힘이 빠진 하세가와의 후임으로 사이토 마코토를 조선총독으로 임명한다. 알다시피 그는 5000년 우리 단군의 역사를 곰이야기로 전락시키고 민족혼과 민족정신을 피폐하게 만든 조선총독부의 수장이었다.

며칠 뒤 9월 2일, 신임 총독 사이토 일행을 태운 열차가 오후 5시 정각 남대문 역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일본군대와 경찰은 이날 아침부터 남대문역 주변과 인근 일대에 삼엄한 경계를 폈고 오후 5시 남대문역에 도착한 사이토 총독은 출영객들과 악수를 나누고 남대문역 광장에 이르렀다. 총독 내외는 마차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고 앞좌석에는 비서관이 자리를 잡았다. 마차가 출발하자 남대문역 광장 인근에서 검은 물체가 마차 근처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사이토 총독을 촬영하던 사진기자 바로 옆에서 폭발하였다. 폭발 굉음에 기병들이 타고 있던 말들도 이리저리 날뛰었고 서로 피신하느라 사고현장은 아비규환 상태였다. 사건발생 후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을 색출하려 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확보하지 못하고 범인 색출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특정 인물들을 혐의자로 몰아가는 기사가 몇 번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등장했으나 여전히 미궁인 채로 남았고 영구미제사건으로 남는 듯 했는데 사건 발생 한 달 여 만에 폭탄사건의 범인으로 강우규 의사가 검거되었다. 강우규 의사는 폭탄투척의거 후 복식을 고쳐서 서울 시내 이곳저곳에서 숨어 은닉하다가 어이없게도 일제의 앞잡이 김태석에 붙잡히게 되었다. 사이토총독은 강우규 의사가 고희에 가까웠으니 65세의 백발의 노인이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20년 2월 14일 강우규 의사의 재판이 변호인도 없이 시작되었다. 고압적인 재판장의 심문에도 강우규 의사는 재판정에서 결코 꺾이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셨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직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고 이 시는 지금 동상하단에 쓰여 있다.“단두대 위에 홀로 서니 춘풍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선각자요, 한의사였으며 기독교 신자였던 독립운동가, 조상인 국조단군을 존경하면서도 예수님도 진정 사랑하셨고 뜨거운 국혼을 지키려고 하신 국학인, 지금 서울역광장에는 이런저런 종교를 믿어라고 노래섞인 확성기소리가 요란하지만 독립을 위한 그분의 의연한 가슴과 주먹, 눈빛에 조용히 덮힐 뿐이다.

올해는 그분의 의거 96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의 외가인 진주강씨 문중에서는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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