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서재 ‘운주당(運籌堂)’
이순신 장군의 서재 ‘운주당(運籌堂)’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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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ㆍ한민족 역사문화 공원 공원장
 

1597년 9월 16일(음력)은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명량대첩을 일구어 내신 날이다. 2014년은 영화 '명량'이 그 기록을 갱신하기 어려운 최대의 관객 수, 약 1,,800만 명 가까이 기록하였다. 국민들은 울고 웃으면서 그 승리의 과정을 보면서 뜨거운 호국의 마음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승리를 창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휘관의 소통력에 달려 있다. 리더와 조직원들의 물 샘 틈 없는 소통만이 승리의 길이며 살길이다. 현재 통영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制勝堂)’은 ‘승리를 제조하는 집’이란 말이다. 본래는 이순신장군의 서재인 ‘운주당( 運籌堂)’ 터였다. ‘운주(運籌)’란 ‘지혜로 계책을 세운다.’는 뜻이다. 최고 지휘관인 장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장군, 고위 군관들과 나아가 병졸일지라도 군사와 전투에 좋은 지혜와 꾀가 있는 사람은 상하 없이, 밤낮 없이 누구나, 언제나 출입하여 의견과 정보를 교환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늘 엄숙하고 어렵기만 한 곳은 아니다. 운주당은 이순신 장군의 병법 책이 가득하고 향불이 켜져 있는 고상한 서재만이 아니었다. 그곳은 상하의 계급에 따라 딱딱하게 격식이 차려진 회의장소가 아니었다. 관병과 의병과 백성이 수직적 고리인 갑과 을의 관계로 굳어진 곳이 아니었다. 그분의 서재는 바로 집무실이자, 회의실이자 휴게실이었다. 군무에 바쁘지 않으시면 부하들과 늘 바둑도 두고 술도 마셨다. 크게는 군사전략을 논했고, 조선 수군에 대하여 이야기했으며, 군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들었다. 작게는 부하들의 고충과 아이디어를 가감 없이 들으시고,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를 격의 없이 그러나 온몸으로 경청하신 개인적인 공간이었다. 조선 수군의 앞길과 백성들의 생활, 임금과 나라의 안위를 밤낮을 걱정했던 진실한 지도자의 방이었다. 그러므로 운주당은 항상 열려 있었고, 일반 병사들도 찾아올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고 23전 23승을 잉태한 공간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불려가 고문을 당할 때, 대신 원균이 지휘관이 되었고 당연히 운주당을 관리하게 되었다. 연전연승, 불패의 막강한 조선수군의 수장이 된 원균은 먼저 이순신 장군을 따르던 수하 장군들을 미워하며 멀리하였다. ‘운주당’에는 두 겹의 장막을 둘러치고, 사랑하는 첩과 음주에 탐닉하면서 안팎을 막아버렸다.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처음에 원균(元均)이 한산도에 부임하고 나서 이순신이 시행하던 여러 규정을 모두 변경하고 이순신을 보좌하던 모든 장수와 사졸들과 이순신에게 신임을 받던 사람들을 모두다 쫓아버렸다. 특히 이영남(李英男)은 자신이 전일 패전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더욱 미워하였다. -중략- 원균은 자기가 사랑하는 첩과 함께 운주당에 거처하면서, 이중 울타리로 운주당의 안팎을 막아버렸다. 여러 장군들은 그의 얼굴을 보기가 드물게 되었다. 또 술을 즐겨먹고서 날마다 술주정을 부리고 화를 내며, 형벌을 쓰는 일에 법도가 없었다. 군중에서 자기들끼리 가만히 수군거리기를, 만일에 왜놈들을 만나면 이 상황에서 우리는 달아날 수밖에 없다. 여러 장군들도 서로 원균을 비난하고 비웃으면서, 또한 원균이 두려워서 군사 일을 제대로 아뢰지 않게 되므로 그의 호령은 부하들에게 시행되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 수군은 1597년(선조 30)7월 15일 ‘칠천량’에서 괴멸당하고, 이순신장군의 휘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많은 장군들과 병졸들이 수중고혼이 되어 버렸다. 조선의 운명은 그야 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 되었다. 조선수군의 최고의 지휘관인 원균은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고 대마져 끊어진다.
이로써 위대하고 고귀한 승리의 산실이 패전의 산실로 급전직하 하였다. 소통의 운주당이 불통의 운주당이 되자마자 승리대신 비참한 패배가 들이 닥쳤다.

그러나 이로 딱 2개월 후, 이순신장군은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 선단을 격파하시며 명량대첩으로 다시 ‘제승’하신다. 조직원의 마음을 100% 완전하게 하나로 모으고 뜻을 굳혀 결국 승리로 이끄는 것은 소통력으로 집단지성을 도출하는 위대한 지도력이다. 지략과 승리를 위한 경청의 소통력은 리더에게 주어진 ‘승리를 제조하는 습관적인 성품’이다. 그러나 그 소통력은 그의 끊임없는 한숨과 땀과 눈물과 피로 익어 온 내공의 결과이다.

2015년 현재, 더욱 거칠어진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격량 속의 대한민국 호를 안전하게 지켜갈 소통하는 슬기로운 지도자들과 인성이 살아 소통하는 수많은 홍익 국민의 배출이 절실한 시기이다. 한민족의 일원이라면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 지구촌의 모든 종교, 사상, 국경을 넘어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운주당’을 한 채씩 지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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