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제
진주대첩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0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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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우리 조선군이 왜군을 크게 이긴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진주대첩은 두 차례의 전투를 말하며, 제1차 진주전투는 승전이고, 제2차 진주전투는 의기 논개의 죽음으로 알려진 패전이다.


제1차 진주전투는 1592년 10월 5일 나가오카 다다오키(長岡忠興) 휘하의 왜군 2만명과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지휘한 3800명의 조선군 간에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으로 왜군은 10월 10일에 6일간의 대접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주했다.

제2차 진주전투는 제1차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왜군이 1593년 6월 19일부터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우키타 히데이에 등의 지휘로 3만 7000명의 병력이 진주성을 공격해 창의사 김천일,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의병장 고종후 등이 이끈 3400명의 병력과 6∼7만 명의 일반민이 모두 학살되고 가축도 모두 도살됐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중에 벌어진 전투 가운데 최대의 격전으로 꼽힌다.

진주대첩을 기리기 위한 '진주대첩제' 행사를 두고 지역문화계가 양분되는 양상이다. 진주대첩기념사업회가 기존의 행사 대신 별도의 진주대첩제를 오는 12~13일 열기로 하자 진주문화원과 진주예총 등에서 기존의 개천예술제와 남강유등축제, 논개제 등과 유사중복되는 행사라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진주정신을 기리는 진주대첩제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지역에서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지금이라도 양측이 머리를 맞대서 해결책을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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