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지리관
우리들의 지리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2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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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도시의 젊은 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은퇴할 연배들은 어디서 살 것인가에 신경을 쓴다. 결국 그것은 도시가 평생을 의탁할 땅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런데 전통 사회였던 조선 시대 사람들도 살아갈 터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심을 했으니, 한편으로는 당연한 듯하기도 하지만 좀 기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때야 환경오염도 없었을 테니 굳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떠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짐작 때문이다. 즉 짐작컨대 당시 민초들이야 그런 일에 마음을 쓸 여유조차 없었겠지만 벼슬깨나 했던 양반들에게는 해당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땅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았던 것 같다.


그 하나는 사람과 땅의 조화가 사람의 기(氣)와 땅의 기(氣) 즉 지기(地氣)가 상생 관계를 유지할 때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바로 풍수 사상이었다. ‘인걸(人傑)의 태어남은 지령(地靈)에 기인한다.’는 말은 원래 4세기 중국 이론 풍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동진(東晋)의 곽박(郭璞)이 한 말인데 실학자들은 이 말을 신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땅을 생산의 근원처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이런 관점은 땅과 사람과의 이적(利的) 상교(相交)로서 실학자들은 이것을 지리(地理)라고 표현했다. 즉 그 지방의 산천·생산물·특산품·고적·인물·인구 등에 관심을 갖는 분야이다.

이렇게 하여 전자의 풍수와 후자의 지리가 합쳐져 풍수지리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땅은 풍수만으로도 설명이 불완전하고 지리만으로도 설명이 모자란다고 하기도 한다. 즉 풍수와 지리 양자를 모두 살펴보아야 제대로 그 땅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풍수는 전적으로 무시되고 지리만이 땅에 관한 합리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땅의 이적 상교, 즉 어떻게 하면 최소의 노력으로 땅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경제적인 측면에만 집중적인 관심을 쏟게 되었다. 당연히 땅과 사람의 정적(靜的) 교감을 중시하는 풍수에는 등한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공간 구조의 철저한 비인간화를 불러온 것이다.

정(情)을 내버린 사람들에 의하여 정통의 풍수를 잊은 땅은 필연적으로 무정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정한 것은 사람들이었으니 누가 땅의 무정함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현명한 선조 실학자들은 풍수의 정적 교감과 지리의 이적 상교를 모두 살필 줄 알았으니 땅을 볼 때 풍수적으로 좋은 땅은 길지(吉地)나 승지(勝地) 등으로 표현하고, 지리적으로 살 만한 땅은 가거지(可居地)나 적지(適地)등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유교의 가치관과도 결부되는데,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명제에서 나의 수양을 위한 현실 도피적인 입지 성향이 나오는가 하면, 남을 다스린다는 현실 참여적인 입지 성향도 아울러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비슷한 현상으로 드러난다. 경제적·사회적 삶을 위한 도시 거주 선호와, 인간적 삶을 지향하는 전원생활 취향이, 예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에게서 아무런 갈등 없이 드러나는 데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중환이 쓴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터 잡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무릇 집터를 잡음에 있어 살펴야 할 으뜸은 지리이고 다음이 생리이며 그다음은 인심이고 그리고 또 그다음이 산수인데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좋은 터라 할 수 없다.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그 터는 오래 살 곳이 못되고, 생리는 비록 좋으나 지리가 나쁘다면 역시 사람이 살아갈 터가 아니다. 지리와 생리가 다 좋다 하더라도 인심이 고약하면 더불어 살 만한 곳이 못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는 풍수지리이고 생리란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물질적 재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생산성과 교역에 중점을 두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런 입지 조건의 터를 잡아 살기를 바라지만 지리와 산수가 좋으면 생리와 인심이 문제라 산수 좋은 곳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인심 또한 사나워지고 말았으니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살기란 한낱 환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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