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과 루즈벨트 대통령
고혈압과 루즈벨트 대통령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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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원/남해 들꽃 자연의학센터 원장ㆍ미국 가정의학 전문의ㆍ전 미국 의과대학 교수

유명한 사람의 죽음이나 영향력이 간혹 의학의 역사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죽음이 그러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이다. 그는 1933년 부터 1945년 까지 12년 간 미국의 대통령으로 일했다. 그가 대통령직을 시작한 1933년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있던 때로, 미국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는 뉴딜정책을 시도하여 미국을 대공황으로 부터 건져냈다. 1939년 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1945년에 끝나게 되었다. 그의 큰 업적 중의 하나이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아브라함 링컨 다음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그 뿐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연합국의 승리 뒤에 찾아 온 우리나라의 독립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고마운 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대통령직을 시작한 1933년 이전에는 특별한 병치레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시가를 태우기를 좋아하였다. 대통령직이라는 어렵고 고독한 시간은 그의 건강을 갉아 먹었다. 특히 시가를 즐기는 그의 습관과 운동 부족이 그의 혈관을 망가트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 그의 혈압은 120/80 정도로 좋았다.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업무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그의 혈압을 높였고, 1945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 그의 혈압은 220/130 정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결국 그는 뇌출혈로 사망했다.


1945년 당시의 의사들은 고혈압을 질병으로 보지 않았다. 우리 신체의 혈관 어딘가가 막혀 있을 때 혈압을 높여서 원활한 혈류를 유지하는, 우리 몸을 보호하고 위하는 하나의 증상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혈압이 오르는 것은 병적인 나쁜 것이 아니라, 혈류를 원활하게 하여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보상작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치의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높아지는 혈압을 관찰만 했지 적극적인 치료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망 이후 의사들은 고혈압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고,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혈압은 말 그대로 혈압이 높아진 상태이다. 120/70 정도의 혈압이 정상이라면, 140/90 이상의 혈압을 고혈압 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에는 괜찮았는데, 50, 60 나이가 들며 혈압이 올라간다. 실제 고혈압 환자의 90%는 높아진 혈압의 원인을 모르는데, 이를 일차성 고혈압 또는 본태성 고혈압이라고 한다. 10% 이내의 환자에게서 갑상선 질환, 부신 질환 또는 신장 질환으로부터 고혈압이 유발되어서 이차성 고혈압이라고 한다.

원인을 못찾는 일차성 고혈압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족력과 같은 유전적 요인, 과다한 소금 섭취, 정신적 긴장과 스트레스, 음주 등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여러가지 많은 원인들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모세혈관의 막힘이 고혈압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힘찬 심장 박동에 의해 뿜어져 나온 혈액은 대동맥을 거쳐 동맥, 세동맥을 지나 모세혈관에 전달된다. 우리 몸은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세포에는 모세혈관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되며, 세포에 쌓여 있던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는 다시 모세혈관, 세정맥, 정맥을 거쳐 간, 폐로 전달되어 혈액은 정화된다. 이 모세혈관은 머리카락 보다도 더 가는 통로(약 8-10 마이크론)이다. 또 모든 모세혈관을 일렬로 이어 놓으면 약 10만 km의 길이가 되는데 그 것은 지구를 두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이다. 우리 몸의 각 세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 많은 양의 모세혈관이 필요한 것이다.

모세혈관의 혈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혈액의 점성도(끈끈한 정도)와 적혈구이다. 혈액의 끈끈한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혈액 순환이 더디어질 것은 자명하다. 적혈구는 도너츠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10 마이크론 정도이다. 때로는 자기 크기보다 더 작은 모세혈관을 통과할 때는 똑바로 못들어 가고 접혀서 통과하게 된다. 의학용어에 Rouleaux form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은행에서 동전을 받아올 때 100개의 동전을 종이에 나란히 묶어서 준다. 그 동전이 쌓여있는 것처럼 원판형의 적혈구가 서로 쌓여서 붙어있는 적혈구 응집 상태를 말한다. 적혈구가 하나하나 떨어져있는 상태에서는 모세혈관 통과가 쉽지만, 서로 엉키고 붙어있는 상태로는 모세혈관 통과가 어려워지니 각 세포에 혈액 공급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적혈구 응집상태가 심할수록, 또 혈액의 점성도가 높아질수록 혈액순환이 안좋으니 심장은 더 센 힘으로 혈액을 짜주어서 막힌 혈관을 뚫고 각 세포로 혈액 공급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태가 고혈압인 것이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고혈압을 치료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고혈압약은 혈관확장제이다. 혈압이 높으니 혈관을 확장시켜서 혈압을 낮추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혈관이란 동맥을 말한다. 굵은 크기의 동맥은 근육층이 있어서 고혈압약에 의해 혈관이 확장되고 혈압은 떨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모세혈관은 근육층이 없는 단순한 세포층으로 되어 있어서 약에 의해서 확장은 되지 않는다. 결국 고혈압약은 모세혈관은 확장시키지는 못하고 동맥 혈압만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혈관이 막혀 있어서 혈압이 올라갔는데, 막힌 모세혈관은 그대로이고 혈압이 더 떨어진다면 혈액순환이 더욱 안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고혈압을 약으로 치료하는 것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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