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금ㆍ배려금을 준 목적
은사금ㆍ배려금을 준 목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9.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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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향토사학자

1910년 10월은 일본 왕이 소위 은사금을 내려 준 치욕의 달이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자 일본 전역은 축제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본 왕은 한일합방에 공로가 큰 이완용에게 20만원(100억 상당)을 지급하고 이재면에게는 가장 큰 금액 166억을 지급하고 각 대신급에게는 15만원(75억)씩 지급하고 을사오적에게도 15만원, 고문급에게도 5만원, 그 외 국장급에게도 2~ 3만원, 이재각, 이재완 등과 이미 사망한 대신급에게도 3~10만원을 지급했다.


시ㆍ도에도 은사금이란 이름으로 지급했는데 부산 6만9800원. 진주 8만3200원. 하동 6만200원. 고성 6만3200원. 곤양 4만1300원. 산청 4만9500원. 남해 5만2600원. 사천 4만1300원을 지급했다. 각 개인별로도 고령자들, 고아, 과부, 홀로 사는 노인들, 효행자, 각 고을의 친일 공로자들을 찾아 10원에서 500원을 지급했다.

이 때부터 조선 전국은 쥐 죽은 것처럼 조용해 졌는데 돈의 위력이 대단함을 실감하게 된다. 1908~1909년 사이 전국적으로 치열했던 의병 투쟁은 어디로 가고 잠잠해 진 것은 물론 일제가 고마운 존재로 부각되고 의병했던 자들을 잡아 주거나 고발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또 일본 말을 배우는 열기가 크게 일어나 개인 강습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종교 시설에서도 일본어 강습소가 생기는 희안하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조선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쓸게 빠진 놈들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1910년 10월부터 일본 왕의 특사라는 이름으로 옥중 죄수들을 대거 석방하거나 형벌을 감형하는 정책을 펼치니 일제에 대한 불만은 사라져 버렸다.

친일파들은 일본 관광단을 조직해 이재극과 부인, 이완용과 부인, 조중응과 부인, 윤덕영과 부인, 박제순과 부인 등은 간호사 2명, 의사 1명을 대동하고 부산을 거쳐 일본 동경, 대판 등지로 유람하며 즐겼다.

지방에서도 일본의 선진문물을 보고 배운다는 목적으로 일본 유람선을 타고 동경을 다녀왔는데 한번 갔다 온 사람들은 완전한 친일파로 변신해 일본인보다 더욱 철저한 친일탄압자로 변신했다.

북한 김정은은 금년 추석에 한가구당 500원씩 분배했는데 4명 가족이 한 달간 지낼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 북한의 동요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라는 비평보도가 있다.

일본 왕이 조선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소위 은사금을 주었고 김정은도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배려금을 지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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