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판 붙다
또 한판 붙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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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명절이 되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한 판 붙는다. 나의 시댁은 아주 작은 섬이다. 지금 그 곳에 사는 주민이 스무 명이 될동 말동이다. 종단 거리가 약 천오백 미터 안팎이고 횡단 거리는 천 미터를 넘지 않을 것이다. 가고 올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무엇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작아서 더 마음이 애잔한 것인지도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토록 아름다운 곳에서도 인간이 모이면 싸우게 되는 모양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며 나는 지난해 겨울에 집을 산 일을 상기했다. 평소에 내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마구 하는 걸 눈여겨 본 이웃집 복덕방 아저씨가 급매로 싸게 나온 집이 하나 있으니 사두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의논했더니 자기 앞으로 되어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되겠다며 슬그머니 동의해 주었다. 어떨 결에 집을 사고 나서야 나는 남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시어머니가 연로하시니 그 곳으로 모시자는 의중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선뜻 집을 사더라니.

시어머니든 친어머니든 연로해 거동이 불편하면 가까이 모셔야 되겠다는데는 나도 이의가 없었다. 시어머니한테 바로 연락을 했다. 추우니까 올라오셔서 설은 여기서 보내시라고. 시어머니는 평소 고향을 안 떠나겠다던 고집을 접고 올라오셨다. 올해 딱 팔순이시니 당신께서도 고집을 접는가 싶었다. 그러나 웬걸, 올라오시기가 무섭게 도시생활에 대해 매일 같이 불만을 하셨다. 게다가 참을성 없는 나는 이제 내려가시면 나도 다시는 그 오지 섬으로 안 가겠다고 막말을 했다. 그래도 설을 지내고 한 달 쯤 견디더니 끝내 떠날 궁리를 구체화 하셨다.

처음에 옷을 챙겨와야 한다고 구시렁 거리시길래 못들은 척했다. 고추도 제일 큰 차대기로 두 차대기나 고방에 있으니 그놈을 빻아서라도 가지고 와야겠다고 성화를 대셨다. 또 못 들은 척했다. 조금 심어둔 마늘에 쫑이 나왔을 것이니 그걸 뽑아 와야된다고 했다. 이번엔 못들은 척 못하고 다다다 댓거리를 했다. 마늘쫑 그까짓 게 얼마나 한다고 천리나 만리나 차비를 들여서 가느냐고. 시어머니는 마늘은 쫑을 뽑아주지 않으면 뿌리가 굵어지지 않는다는 걸 들이댔다. 하도 열받아서 노인네를 내가 어떻게 할까 스스로 무서워 못들은 척하고 내 집으로 와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나도 모르게 혼자 섬으로 들어가셨다, 기어이!

기차가 목포에 도착하자 나는 주문을 외웠다. “don’t look, just see!” 내가 개발한 콩글리쉬 주문이다. 관계하지 말고 무심히 보란 말이다. 그러면 갈등의 여지가 원천봉쇄되지 않은가. 상대가 똥이 된장인줄 알고 먹든지 말든지 내비두란 거지. 집까지 사서 모신다고 하는데도 마늘쫑 핑계대며 도망갔으니 이제 내가 큰 소리칠 차례인 것이다. 내가 시댁에서 한 판 붙는다면 그것은 십중 팔구는 시어머니를 상대할 터였다.

작은 추석날 저녁 무렵에서야 나는 시댁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시동생 내외와 조카딸도 함께 나와 우리 가족을 맞아주었다. 어쩐 일인지 전을 부칠 준비나 송편을 빚을 준비는 하나도 안 해놓고 웬 돼지머리를 다라이에 준비를 해두셨다. 솥에 넣어 삼기 쉬우라도 조각을 내놓긴 해도 돼지 머리가 확실했다. 어쩌라고?? 보기만 해도 징그러워서 나는 그야말로 식겁을 했다. 손아랫 동서도 뭔가 이상한지 형님, 전 부칠건 없나봐요? 외려 늦게 도착한 내게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아무 말 안 하시면 가만 있어보자 했다. 하면서도 은근 이제부터 명절상을 안 차릴 것인가 하고 기대를 했다. 시어머니는 당신 살아계신 동안만 상을 차리자고 늘 말씀해오셨으니까!

그런 기대를 하니 생전 처음하는 돼지머리 요리도 척척하기 시작했다. 가마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잘 씻은 돼지머리를 그 물에 잠기게 넣어 시동생에게 불을 넣어라 일렀다. 남편보고는 밭에 가서 호박잎을 따오라 일렀다. 동서한테는 배추를 절이라 하고 나는 갖은 양념을 넣고 가장 중요한 쌈장을 만들었다. 배추 겉절이와 호박잎과 배추잎으로 머릿고기 보쌈을 할 요량이었다. 식구가 많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사사삭 진행되어 식구들이 포식을 했다. 진짜,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도록 상차릴 준비에 대해선 아무 말 없다가 새벽이 되어 상차릴 시간이 되어 어머니가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나는 부러 코를 더 세게 골며 자는 척 했다. 시어머니는 살금살금 내 곁으로 오더니 내 귀에다 대고 “아무래도 상을 차려야 씨겄다”하셨다. 나는 발딱 일어나 앉아 불을 켜고 시어머니 얼굴을 마주보며 말했다. “나 지금 서울로 갈라요!” 시어머니가 “빌어묵을 것이 성질머리는 더럽게 급혀, 알겄다, 안 차리믄 될 거 아녀” 그렇게 해서 한판은 단숨에 끝났고, 그 원수의 상차리기도 영원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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